양·돼지 넘어 인간에 가장 가까운 영장류 대상 실험
질병연구·장기제공 등 실익 vs.비윤리 논란 재연될 듯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미국과 중국 연구진이 인간의 줄기세포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 배아에 주입해 종간 혼합 배아인 '키메라'(chimera)를 만들고, 최대 20일까지 성장시킨 것으로 과학 저널 '셀'(Cell)에 발표했다.
동물 배아에 인간 세포를 주입하는 키메라 실험은 1970년대에 설치류에 처음 시도된 이후 양이나 돼지 배아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그때마다 윤리 논란을 촉발해 이번에도 논쟁이 재연할 것으로 전망된다.
셀지를 발행하는 '셀 프레스'(Cell Press)와 BBC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솔크 생물과학연구소 유전자발현 실험실의 후안 카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가 이끄는 미중 연구팀은 마카크 원숭이의 배아를 채취하고 6일 뒤에 인간의 '유도만능세포주'에서 뽑아낸 세포 25개를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공동연구팀으로 참여한 중국 쿤밍(昆明)이공대학 동물학연구소장인 지웨이지 교수가 지난해 원숭이 배아를 채취해 체외에서 장시간 배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가능했다.
연구팀이 마카크 배아에 인간 세포를 주입하고 하루 뒤 132개 배아에서 인간 세포를 포착됐으며, 10일 뒤에는 103개의 키메라가 크는 것이 확인됐다.
이후 생존율이 줄어들기 시작해 19일째는 3개의 키메라만 남았지만, 인간 세포는 배아가 성장하는 동안 높은 비율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과 돼지 잡종 배아를 만드는 데 참여하기도 했던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는 "지금까지 인간과 다른 동물의 키메라는 효율이 낮고, 주입된 인간 세포가 배아에 잘 통합되지 않았다"면서 "진화상 이전에 사용된 다른 동물들보다 인간에 더 가까운 원숭이와의 키메라는 진화적 장벽이 존재하는지, 장벽이 있다면 이를 극복할 수단이 있는지에 관한 통찰력을 얻게 해 줄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배아 내 인간과 마카크 세포 전사체의 유전자 발현량을 규명하는 '전사체 해석'을 통해 "세포 간에 새로 형성되거나 강화된 여러 개의 소통 경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키메라 세포 간 소통과 관련된 경로가 파악되면 진화적으로 인간과 거리가 먼 다른 동물 종과의 키메라에서 세포 간 소통을 강화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키메라 세포 발달 과정에 필수적인 소통 경로 파악을 비롯해 종간 세포 사이의 소통과 관련된 분자 경로를 더 자세히 파악하는데 연구의 초점을 맞출 계획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초기 발달 과정을 연구하고 질병 치료 모델을 개발하며, 이식용 세포와 조직, 장기 생산에 활용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는 윤리 논란과 관련해 "윤리적, 법적, 사회적 지침에 따라 사려 깊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우리들의 책임"이라면서 이번 실험에 착수하기 전 "연구소 차원과 독립적인 생명 윤리학자들이 참여한 상태에서 윤리 자문과 검토를 받았으며, 이런 철저하고 상세한 과정이 실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그는 "인간을 대상으로는 특정 형태의 실험을 할 수 없어 인간의 생리와 질병을 더 잘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실험 생물학의 중요한 목표는 생체 내에서 인간 질병을 연구할 수 있는 모델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의학과 생체의학 윤리 연구원인 앤나 스마즈도르 박사는 이번 실험이 "심각한 윤리적, 법적 도전"을 제기하는 것이라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특정 형태의 실험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키메라 배아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배아들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옥스퍼드대학의 실험윤리 전문가 줄리언 사불레스쿠 교수도 "배아는 20일째에 폐기됐지만, 인간과 비인간의 키메라가 성공적으로 개발돼 인간의 장기 공급원이 되는 것은 시간상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이번 실험은 "인간과 비인간 키메라의 판도라 상자를 연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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