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직원들, 열악한 처우·환경 속 사명감으로 일해
"가족 만류에도 현장 복귀…코로나 대응물자 확보, 전쟁 같은 상황"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개인적으로 민주콩고로 돌아와서 상업 비행기가 다시 뜰 때까지 7개월간 가족을 보지 못하고 일만 했습니다."
중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도 꿋꿋이 현장을 지키며 헌신한 성인혜(35)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고마 사무소 응급구호조정관의 말이다.
서유럽 크기만 한 광대한 민주콩고에는 성 조정관을 비롯해 주로 20, 30대인 7인의 젊은 한국인 국제기구 직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3일 주민주콩고 한국대사관(대사 김기주)과 화상 간담회를 가진 이후 대사관을 통한 연합뉴스와 후속 서면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고충과 보람을 털어놨다.
성 조정관은 지난해 민주콩고 내 코로나19 발생 이전 자신은 해외에서 휴가 중이었으나, 4월 중순께 유니세프 민주콩고 사무소장으로부터 돌아올 수 있는지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성 조정관은 "안 그래도 열악한 근무 여건으로 힘든 콩고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더욱더 힘들어진 팀원들을 놓고 혼자만 몸 편히 있는 게 많이 걸렸던지라 그러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 와중에 거길 왜 가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치안도 안 좋고, 가서 아프기라도 하면 치료도 못 하고, 이번에 들어가면 나올 비행기도 없는데 언제 다시 나올 줄 알고 거기에 가느냐는 것.
하지만 성 조정관은 "유엔도 상황이 급박해지면 전 직원 소개조치를 할 것이고, 현재 이 일을 선택한 이상 이 일은 내 일"이라면서 남편을 설득했다.
그는 이렇게 민주콩고로 돌아와 코로나 상황 동안 한 번도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현지 구호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했다.
처음에는 현장으로 가지 못 하게 하는 콩고 정부와 협상을 해야 했고, 자신들이 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수혜자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필드 파견 전 건강검진과 함께 전 직원 및 파트너의 마스크 착용을 하게 했다.
그 결과, 코로나 상황에서도 유니세프는 단 10일만 긴급 구호 지원을 중단했고, 성 조정관은 이러한 유니세프 결정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코로나 자체의 여파보다 그로 인해 줄어드는 인도적 지원이 가질 여파가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
성 조정관은 "무장단체는 코로나라고 해서 공격을 줄이지 않는다"라면서 "또한 응급구호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소외되고, 외딴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코로나에 대한 위험성을 알렸으며, 응급구호 키트에 비누를 포함하고 식수 시설을 공급함으로써 코로나 확산을 줄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오랜 내전을 겪은 민주콩고는 아직 반군과 무장단체가 준동하는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460만 명의 국내 실향민이 있고 이 가운데 267만 명이 어린이다.
최근 현지 이탈리아 대사가 이곳에 시찰 나갔다가 피격돼 숨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고 성 조정관과 필드미션을 같이 진행하던 국제식량기구 파트너가 납치되기도 했다.
그는 7개월간 가족을 못 보고 일만 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면서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개인적 희생은 무엇인지…"라고 말을 맺었다.
박준우(37) 유엔개발계획(UNDP) 취약국 지원 조정 전문관도 "사실 유엔(UN) 직원으로서의 사명감, 이런 것보다는 현지에 어린 자녀들을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에 출국 여부에 대해 고민이 컸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각국 특별기 등으로 콩고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현지의 열악한 거버넌스 때문에 출국 절차도 쉽지 않고 경유 중에 코로나 확진자들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는 출국이 곧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보고 우선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는 현지에서 버텨보기로 했다.
이후 자신의 팀과 함께 주재국 코로나 대응조정 분과회의에 매주 참석하면서 민주콩고가 다른 나라들보다 물자 확보에 굉장히 소외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거버넌스 취약은 곧 물류체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국 내 생산이 불가능한 코로나 대응 물자들을 확보하는 일은 정말 전쟁 같은 상황이었다"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가 이러한 고민을 주변과 나누던 중에 마침 당시 진단 부분에서 잘 대응하고 있던 한국과 협력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는 "한국대사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순천향대학교의료원 등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난해 11월 초 민주콩고 내 제2 코로나 진단센터를 개소했다"라면서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미리 뜻하지 않았지만 값진 경험을 얻게 돼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근(32) 세계식량계획(WFP) 영양사업담당관도 "인도주의 분야에서 일하면서 현장 근무를 하다 보면 이번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의료나 치안, 안전 면에서 열악한 환경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의 스태프 안전 조치와 한국 대사관의 자국민 안전 노력 덕분에, 조심은 하지만 과도하게 걱정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현지의 경제 사정 악화, 식량 가격 상승 등이 심각한 식량 위기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WFP를 포함한 인도주의 기구들의 활동과 개입, 국제사회의 관심과 연대가 중요한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자리를 떠날 때가 아니라 지킬 때가 맞는다고 생각한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민주콩고에서 헌신하는 국제기구 한국인 직원은 이들 외에 윤장미, A(이상 UNDP), 황희주(WFP), 이혜원(국제이주기구·IOM) 씨 등이 있다.
대사관의 임아연 참사관은 "최근 국제기구들에서는 원칙적으로 정년을 보장하는 정규직 자리가 거의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직위에 대한 불안정성도 높은 상황이라고 한다"라면서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신념과 사명의식이 돋보인다"라고 말했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