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확대·감염자 감소로 영업제한 풀리며 정상화 한발짝
LA 한인타운 식당들도 식사 시간 때는 만석…예전 활기 되찾아
한인·주재원 "막혔던 게 뚫리는 듯"…'백신여행' 부모초청 움직임도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성호 정윤섭 특파원 = "손님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만큼 많아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동안 갇혀 있던 사람들이 전부 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애플 본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쿠퍼티노의 중심가 쇼핑몰 '메인스트리트 쿠퍼티노'에 있는 식당 겸 술집 레이지독의 매니저 제이슨은 19일(현지시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이슨은 다만 "모든 식당이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밖에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널찍한 파티오(가게 앞에 딸린 야외공간)가 있어서 그렇지 여전히 수용 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일부 규제가 시행 중이지만 그래도 손님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메인스트리트 쿠퍼티노는 애플 사옥과도 가까워 애플 직원들도 식사하러 찾는 곳이다. 다만 캘리포니아주는 여전히 재택근무를 권고하고 있다.
미시간과 미네소타 등 일부 주에서는 이미 4차 대유행이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이날 연합뉴스가 둘러본 캘리포니아주는 정상화의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접종 확대와 포근해진 날씨에 규제 완화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의 삶이 팬데믹 이전의 정상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쿠퍼티노가 속한 샌타클래라 카운티나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는 캘리포니아주가 정한 경제 정상화의 4단계 중 두 번째로 규제가 약한 '오렌지 티어'에 들어가 있다. 신규 감염자가 줄어든 데 따른 조치다.
지난겨울 코로나19 대확산 때는 최고 단계인 '퍼플 티어'까지 올라가면서 경제 활동이 거의 동결되다시피 했지만, 이제는 식당 등에서 실내 영업까지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역시 이 쇼핑몰에 입점한 필즈커피에서 일하는 데이비드 비런도 "손님이 거의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듯하다"며 "토요일이나 주말이면 손님이 특히 많다"고 말했다. 필즈커피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대표하는 커피 체인점이다.
비런은 "규제 완화에 날씨가 따뜻해지고, 낮이 길어진 데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 같다"며 "사람들도 전보다 덜 불안해하고 덜 걱정하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 쇼핑몰의 '명랑 핫도그' 매장에서 일하는 여점원 로런은 "팬데믹 전보다 손님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우리가 작년 2월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팬데믹이 터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로런은 "손님의 90%는 아시아계로 85∼90%가 재방문 고객일 만큼 한번 찾은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면서 고객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LA 한인타운 역시 예전의 활기를 거의 되찾은 모습이었다.
올림픽 대로에 위치한 한 수제비 전문점은 이날 점심 무렵 손님들이 꾸준히 밀려들었고, 종업원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제한된 범위에서 실내 영업이 허용되면서 손님들은 거리 두기가 적용된 식탁에 삼삼오오 앉아 식사했고, 점포 바깥 야외 테이블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종업원 김 모 씨는 "실내 손님 수용 인원이 50%로 제한돼 있기는 하지만, 실내외 영업 모두 허용되면서 점심, 저녁 시간대 좌석은 만석"이라고 밝혔다.
한인타운 상인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효과에 힘입어 상권이 차츰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밝혔다.
대형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 모 대표는 "제 주변 사람들은 거의 백신을 맞았다"며 "백신 접종이 확대되면서 확실히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고, 손님들도 거리낌 없이 식당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손님 이모 씨는 "백신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는 아이들과 밖에 나오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숨통이 트였다"며 "조심하기만 하면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신의 효과는 LA 한인들과 현지 주재원들의 일상도 바꿔놓고 있다.
식당과 술집뿐만 아니라 야외 공원도 열리고 학교 수업도 재개되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서서히 커지는 분위기다.
초등학교에 다시 아이를 보내기 시작한 한 대기업 주재원은 "꽉 막혔던 게 뚫리는 기분"이라며 "거의 1년 동안 아이와 집에서 생활했는데 이제는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고 밝혔다.
한인들과 일부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한국에 있는 부모를 미국으로 초청해 백신을 맞게 하는 '백신 여행'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재원은 "주변에 미국으로 와서 백신을 맞으라고 부모에게 권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미국이 지난해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유학생 등이 줄줄이 한국으로 들어가던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은 속도를 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큰 대규모 백신 접종소인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는 하루 1만∼1만2천여명을 접종하고 있다고 샌타클래라 카운티 공보 담당자 로저 로스는 말했다.
리바이스 스타디움은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홈구장인데 지난 2월 9일 백신 접종소로 문을 열었다.
당시 하루 접종자가 500명에 그쳤던 것에 견주면 20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로스는 하루 접종 역량을 최대 1만5천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직업 간호사는 물론 훈련받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접종 인력들이 스타디움 내부에 마련된 접종 공간에서 대규모로 백신을 맞히고 있다.
로스는 "백신 접종 역량은 전적으로 백신 공급량에 달렸다"면서 "지금처럼 접종자가 늘어난 것도 공급이 확대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곳에서 두 번째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는 안이라는 젊은 여성은 "이제 안도가 된다"며 "첫 백신을 맞았을 때는 팔이 아픈 것 말고는 별 증상이 없었는데 두 번째 백신 때 더 아프다고 해서 열이 날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sisyphe@yna.co.kr,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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