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외국에서 결혼해 다른 성(姓)을 유지하던 일본인 부부가 자국 내에서 이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소송에서 호적상의 별성 기재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현행 일본 민법(제750조)은 일본인끼리 결혼할 경우 남편이나 아내 중 한쪽의 성으로 통일토록 하는 부부동성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성으로 관할 당국에 혼인신고를 하면 접수되지 않고 호적에도 부부 관계로 기재되지 않는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도쿄지방재판소는 21일 영화감독인 소다 가즈히로(50ㆍ想田和弘) 씨 부부가 자신들의 혼인 성립을 인정해 달라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혼인 자체의 유효성을 인정했지만 다른 성으로 호적에 기재토록 해 달라는 청구는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소다 씨는 1997년 12월 거주하던 미국 뉴욕에서 영화 프로듀서인 가시와기 기요코(柏木規與子) 씨와 결혼한 뒤 뉴욕시 당국에 별성으로 혼인신고를 했다.
뉴욕시는 부부가 동성이나 별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다 씨 부부는 2018년 6월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미국에서처럼 별성으로 혼인신고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성립된 별성의 혼인관계가 일본에서 인정되는지를 따진 첫 사법 판단이다.
일본에서는 부부동성제를 무효화하기 위한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 제도를 유지하는 쪽의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
최고재판소(대법원)도 2015년 부부동성제와 관련한 판결에서 '남녀를 차별하는 불평등한 요소가 없고 가족이 같은 성을 쓰는 것이 일본 사회에 정착했다'는 이유로 합헌으로 판단했다.
일본에서 부부가 한 성을 쓰는 제도가 정착한 것은 성이 보편화한 1868년의 메이지(明治)유신 이후라고 한다.
결혼 후 한쪽 성을 따르게 돼 있지만 아내가 남편 성을 받는 경우가 현재 95%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느는 추세에 맞춰 원하는 경우 선택적으로 부부별성을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을 1996년 마련했지만 보수진영의 반대에 밀려 입법화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언론기관의 여론조사에서 부부별성제 도입 관련 항목이 단골 질문항목이 될 정도로 부부동성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제도를 지키는 쪽의 잇따른 사법 판단에도 불구하고 머잖아 제도가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작년 12월 벌인 여론조사에선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에 49%가 찬성하고 24%가 반대했다.
다만 부부별성제를 인정하더라도 64%는 부부가 같은 성을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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