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없는 '2년차' 수수료 늘려…"손해조사비 많이 떼 영업에 활용"
대리점 영업, 高수수료 상품에 쏠려…"비교 번거로움, 소비자 몫"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40대 직장인 전모씨는 인터넷에서 본 보험 보장 분석 서비스의 상담을 받고 열 살 아들을 위해 A사의 어린이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한 달 보험료가 9만9천원으로 비싸게 느껴졌지만 상해 후유장해에 1억원, 질병 후유장해(90세 만기)에 3천만원, 암 진단에 3천만원(유사암 진단 2천만원), 뇌혈관·심장질환 진단비와 수술비에 각 3천만원 등 보장으로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큰 사고나 질병에 대비할 수 있어서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달 후 전씨는 직장 동료가 B사 어린이보험을 훨씬 저렴하게 가입했다는 것을 듣고 B사를 통해 비슷한 보장으로 설계하니 보험료는 7만5천원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이 20년 완납 후 환급률도 B사가 20% 이상 더 높게 나왔다. 전씨가 20년 완납을 한다면 보험료는 600만원 가까이 더 내면서도 만기 환급금도 더 불리한 조건이 적용된다. 전씨는 몇달치 보험료 원금을 다 못찾더라도 해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전씨는 "인지도가 비슷한 보험사 사이에 이렇게 보험료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품이 거의 표준화된 자동차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과 달리 어린이보험, 운전자보험, 건강 보험 등 종합형 장기 보험은 보험사 간 보험료 차이가 크게 나도 소비자가 비교·인지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법인보험대리점(GA)은 소비자가 다양한 상품을 비교, 선택할 수 있는 보험 판매 채널이지만 실제로는 판매수수료를 많이 지급하는 상품 위주로 권유가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대형 GA는 소비자에게 유사 상품 3건 이상을 비교·설명해야 하는 의무(보험상품비교설명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에 한계가 꾸준히 지적됐다.
시장이 판매수수료에 좌우되는 것을 막고자 계약 첫해 판매수수료를 월 납입보험료의 1천200%로 제한하는 규정이 올해부터 시행됐지만 일부 보험사가 제한이 없는 '2년차 판매수수료' 형식으로 규제를 피해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년차에 접어든 계약에 대한 판매수수료는 100∼150% 수준이지만 공격적 영업을 펼치는 보험사는 200∼350%까지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대형 보험대리점은 일부 손해보험사 상품에 대해 많게는 월보험료의 300%를 2년차 판매수수료를 지급하는 영업 프로모션을 벌였다. 이들 보험사는 '예정 손해조사비' 등을 과도하게 책정한 후 남은 손해조사비를 판매수수료 영업에 활용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예정 손해조사비는 납입 보험료에서 피보험자의 보험사고(피해) 조사에 쓰고자 미리 떼는 비용이다. 공시 항목도 아니고 최근까지 당국의 관리 대상도 아니었다.
6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형 손해보험사가 장기보험에 대해 보험료의 3%대를 책정하지만 전씨 사례의 A사는 6∼9% 수준이다. 일부 상품은 최근까지 예정 손해조사비 명목으로 10∼20%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A사는 소비자가 낸 보험료에서 예정 손해조사비를 많이 떼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보험사와 같은 수준의 보험금을 보장하려면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것"이라고 주장했다.
◇ "보험료 오를라"…당국 최근 지침 마련
판매수수료 경쟁이 과열되며 업계 전반으로 예정 손해조사비 비율이 상승하고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작년 말 금융당국은 예정 손해조사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또 A사 등 손해조사비 비율을 높게 잡은 보험사에 가이드라인을 반영하고 준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손해조사비를 임의로 정하지 말고 근거에 따라 책정하도록 지침을 만들었고, 각 사가 보험개발원을 통해 검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손해조사비를 책정한다는 지적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손해조사비 비율이 높게 운영됐지만 보험료와는 무관하다"며 "그것 때문에 보험료가 비싸다면 우리 상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당국이 제시한 지침을 반영하는 작업도 성실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시장 환경에서 보험사의 판매수수료 살포 영업의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장기 인(人)보험을 가입하기 전 여러 경로로 보험료를 비교하는 번거로움은 소비자의 몫이다. 소비자가 유리한 상품을 고를 수 있게 한다는 GA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생명보험협회나 손해보험협회 웹사이트를 통한 공시는 너무나 복잡해서 일반인이 보험료 비교용으로 이용하기는 힘들다.
보험다모아(https://e-insmarket.or.kr/) 서비스가 일반 소비자에게는 더 직관적인 비교 결과를 보여주지만, 보장 구성이 다양한 상품의 유불리를 직접 비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보험대리점에서 권유한 상품(보험사)이 있다면 그대로 계약하지 말고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보험사 여러 곳에 문의해 같은 보장 수준으로 설계할 때 보험료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면 선택에 참고할 수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완전히 동일한 상품은 없지만 비슷한 수준의 보장으로 보험료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볼 수 있다"며 "장기 보험은 납입기간이 수십년이므로 보험료 1만원 차이로 소비자의 유불리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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