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포함…"당장 반도체 수급난 해소는 어려울 듯"
전문가들 "일회성 지원에 그쳐선 안 돼…장기적·안정적 지원책 수립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권희원 기자 = 정부가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13일 발표한 종합 지원책 'K반도체 전략'에 대해 반도체 업계는 대체로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도체 기업과 협회가 그간 정부에 꾸준히 요청해왔던 핵심 요구사항인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확대와 전문인력 양성 등이 지원책에 포함된 점에 반도체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만 자동차 업계에선 이번 대책이 장기적으로 국내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기여할 수 있겠지만, 당장의 반도체 품귀 현상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반도체 지원 대책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이고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반도체 업계 "정부에 건의한 세액공제·인력양성 모두 포함돼"
지난달 정부에 '반도체 산업 발전 건의문'을 제출했던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이날 정부의 반도체 지원 대책에 대해 "산업계 건의가 잘 반영이 된 대책"이라며 환영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난달 제출한 건의문의 핵심은 시설 투자 세액공제 활성화와 전문인력 증원이었는데, 그 내용이 모두 지원책에 포함됐다"며 "연구개발·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로 국내 반도체 투자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협회는 지난달 50% 수준의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요청했지만, 정부는 '핵심전략기술'에 한해 기업 규모에 따라 연구개발 투자 최대 40~50%, 시설투자 최대 10∼20%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이 40% 세액공제 지원책을 폐기하는 등 변화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정부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차질없이 이행돼 국내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도 정부 지원책이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일부 세부 내용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공언한대로 많은 지원책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세액공제로 국내 투자 여건이 개선되고, 전문인력 증원에 따라 사업 확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국내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서로 경쟁구조가 아닌 반도체 생태계를 함께 구성하는 협력관계인데, 세액공제가 기업 규모별로 차이가 큰 점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 결정을 환영한다"면서도 "2030년까지 장기적 방향성은 나왔지만,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핵심전략기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등 세부적인 내용이 구체화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목표가 달성할 수 있도록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업계와 협력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완성차 업계 "당장 반도체 수급난 해소는 어려울 듯"
최근 세계적인 수급난이 발생한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중장기적으로 미래차 핵심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를 추진하고, 삼성전자·현대차 등 차량용 반도체 수요·공급 기업 간 연대·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완성차 업계는 이번 대책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당장의 반도체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차량용 반도체는 개발까지 10년가량이 소요되는 데다 안전성이 중요해 공정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장기적인 반도체 수급 안정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지금 당장 반도체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차량용 반도체를 국산화하더라도 완성차업계가 국산 반도체를 납품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글로벌 반도체 업계와 경쟁하기 위한 전략까지 정밀하게 내재화 대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완성차업체 관계자도 "이번 대책은 국내 반도체 사업의 저변을 키우기 위한 것이지 폐쇄적인 반도체 공급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반도체 수급난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 미래차 전환 과정에서 중요성이 높아질 고성능 반도체 개발을 가속하려는 정책의 방향은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영호 한국자동차연구원 모빌리티산업정책실장은 "차량용 반도체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이 구속력 있는 협력을 하면서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2∼3년 뒤에 고성능 반도체 부족으로 닥쳐올 수 있는 위기들을 대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일회성에 그쳐선 안 돼…장기적·안정적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지원 대책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양대 박재근 융합전자공학부 석학 교수는 "시설투자 결정에서 실제 제품 양산까지 최소 5∼10년의 장시간이 소요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바뀌어도 연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반도체특별법' 법제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회, 관계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박 교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미래 투자를 위해 세액공제 지원을 처음으로 도입한 점은 높게 평가하지만, 세액공제 비율이 낮아 다소 아쉬운 것은 사실"이라며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핵심전략기술'을 구체화할 때 정부가 학계, 산업계와 꼭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명예교수인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사업단장은 "반도체 산업 지원책은 긍정적이지만,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웨이퍼를 들고 회의에 나오니까 갑자기 정부가 지원책을 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 지원 정책이 여론에 따른 '반짝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세밀한 전략 속에서 집행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kc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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