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현 총리 차기 대통령직 물망…조기총선으로 이어질수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임기를 8개월가량 남겨둔 이탈리아 대통령이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혀 정치권에서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ANSA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르조 마타렐라(79)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로마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처음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자리인 줄 알기에 걱정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하지만 두 가지가 나를 도왔다. 훌륭한 협업자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탈리아 헌법에 따라 어떤 주체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 있었다"라며 "대통령은 여러 정치적 제안을 중재할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8개월 뒤에는 대통령으로서의 내 임기가 종료된다. 고령인 나는 이제 몇 달 뒤면 쉴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마지막 발언은 마타렐라 대통령이 사실상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져 주목을 받았다.
2015년 2월 임기 7년의 대통령직에 취임한 마타렐라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헌법상 이탈리아 대통령직은 중임제로 규정돼 있지만, 마타렐라 대통령의 전임인 조르조 나폴리타노 외에는 재선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전 대통령의 경우 2006년부터 7년 임기를 마친 뒤 2013년 재선됐으나 2015년 자진해 물러난 바 있다.
마타렐라 대통령의 연임 포기 가능성이 주목받는 것은 마리오 드라기(73) 총리가 이끄는 현 연립정부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이는 연정 안팎에서 드라기 총리를 차기 대통령으로 천거하려는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동맹(Lega)·이탈리아형제들(FdI) 등 극우 정당들은 드라기 총리의 차기 대통령 추대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기 총리가 대통령직을 위해 총리직에서 물러난다면 결국 2018년 구성된 현 의회 임기를 1년여 앞두고 조기 총선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드라기 총리를 대체할 만한 정치 중립적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인 드라기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사회·경제적 위기 극복이라는 중책을 맡아달라는 정치권의 부름을 받아 지난 2월 좌·우를 아우르는 거국 내각을 구성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드라기 총리를 차기 대통령으로 미는 것은 이대로 조기 총선이 치러질 경우 지지율 상 자신들이 속한 우파연합의 집권 가능성이 크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현재의 정치 구도상 마타렐라 대통령이 뜻대로 재선을 포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치 컨설팅사인 유트렌드의 조반니 디아만티 컨설턴트는 블룸버그 통신에 "드라기 내각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 차기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라면서 "마타렐라 대통령이 유일한 선택지로 남을 수도 있다"고 짚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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