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중의 최고' 이미지 탓에 너도나도 우주비행사 자처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민간인의 우주여행 기회가 늘어나면서 어느 선까지 '우주비행사'(astronaut)로 불러야 할지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우주 비행을 정부가 독점할 때는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장기간 우주 관련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만 우주비행사로 불렸지만, 이제는 잠깐이라도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나갔다 오면 우주비행사로 자처하고 그렇게 불리길 바라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 선발 경쟁이 치열하고 '필사의 도전'(The Right Stuff)과 같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최고 중의 최고라는 이미지가 각인된 탓이 크다.
AP통신에 따르면 하원의원 시절 우주왕복선 '컬럼비아'를 타고 6일간 우주를 다녀온 빌 넬슨 NASA 신임 국장은 자신을 우주비행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우주비행사라는 용어를 "동료 전문가들의 것으로 남겨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러시아 당국에 비용을 내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온 컴퓨터게임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은 '우주 관광객'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에 질색한다. 그는 우주 비행을 위해 2년간 훈련 받은 점을 내세우며 "나는 우주비행사"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내년 1월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 캡슐을 통째로 임대해 민간인만의 우주비행을 추진 중인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의 NASA 우주비행사 출신 직원 마이클 로페스-알레그리아도 "우주에 갔다 왔다면 우주비행사"라고 했다. ISS까지 첫 민간비행을 이끌 그는 1인당 5천500만달러(약 606억원)씩 낸 민간인 3명이 ISS에서 독자적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면서, 이들도 자신을 우주 관광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은퇴한 NASA 우주비행사 마이크 멀레인도 결은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주장을 폈다.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되고 우주왕복선을 타기 전까지 6년간 자신을 우주비행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그는 지난 2006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돈을 내든, 임무를 부여받았든 관계없이 로켓을 타고 일정 고도까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우주비행사가 아니다"고 썼다.
하지만 ISS까지 무인 캡슐이 다닐 정도로 비행이 완전 자동화한 상황에서 전문 우주비행사의 인솔을 받아 우주선을 타고 가면서 비상시 대처법을 훈련받았다고 해서 우주비행사로 불릴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어디서부터 우주로 볼 것인지의 기준도 논란의 대상이다.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 오리진'은 약 100㎞ 상공까지 올라가 몇 분간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고 돌아올 고객을 모집하면서 '우주비행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탐험가협회'(ASE)는 적어도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한 바퀴 이상 돈 사람만 회원으로 받아주고 있다고 한다.
우주 관련 저서를 내온 포드햄대학의 역사학 교수 아시프 시디키는 수천 명은 아니라도 수백 명이 우주에 갔다 오면 그들 모두를 우주비행사를 부를 수 있겠느냐며 이 용어를 퇴출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주왕복선을 세 차례 탄 멀레인은 "우주비행사라는 용어가 저작권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우주비행사를 자처하고 싶은 사람은 우주에 갔다 왔든 아니든 자신을 우주비행사로 부를 수 있다"면서 "우주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돈을 내고 갔는지 등을 따져" 우주비행사를 여러 등급으로 나누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NASA 역사가 로저 라우니우스는 군대식 위계 서열을 정하는 것이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급격히 복잡해질 것"이라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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