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사과는 안 해…르완다 대통령 "사과보다 더 가치있는 연설"
2010년 이후 첫 프랑스 대통령 방문…투자지원·백신제공 등 약속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8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4년 르완다 투치족 대학살에 프랑스도 책임이 있다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인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집단학살 희생자 25만명이 잠든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AFP, AP 통신 등이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학살에 "프랑스가 공모하지 않았다"면서도 당시 정부의 편에 섰던 만큼 "엄청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가 르완다에서 지역 갈등이나 내전을 피하려고 노력하면서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정권과 사실상 나란히 서 있었다"고 자인했다.
이어 "프랑스는 르완다에서의 역할, 역사, 정치적인 책임이 있다"며 "진실을 규명하는 대신 침묵을 지키며 르완다 국민에게 끼친 고통을 인정하고 역사를 직시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지만 이를 의식한 듯 "누구도 대량학살을 용서할 수 없으며, 우리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르완다가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면서 "끈끈하고 되돌릴 수 없는" 관계를 다시 정립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5년 이후 공석인 르완다 주재 프랑스 대사를 조만간 임명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0만회분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친구"라 부르며 "강력한 연설"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카가메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사과보다 더 가치 있었다"며 "그것은 진실이었고,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엄청난 용기를 가진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카가메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그와 투자, 기업지원과 같은 현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4월 6일 다수 종족인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격추돼 숨지자 다음날부터 석달 넘게 소수 종족인 투치족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프랑스와 르완다는 이 문제로 30년 가까이 책임 공방을 벌이며 신경전을 벌여왔고, 2006∼2009년 외교 관계를 단절할 만큼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르완다를 방문한 것은 2010년 2월이 마지막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은 "심각한 정치적 실수"였다고 말했지만 양국 관계를 아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르완다는 과거 벨기에 식민지였으나, 1970년대부터 같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