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연구진, 산 동물의 뇌 속 바로 보는 '이미징 기술' 개발

입력 2021-05-31 17:21   수정 2021-05-31 17:29

스위스 연구진, 산 동물의 뇌 속 바로 보는 '이미징 기술' 개발
흐릿했던 '형광 현미경 영상' 해상도 획기적으로 개선
뇌 속 입체 영상도 가능…미 광학학회 저널 '옵티카'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지금도 의학계의 큰 논쟁거리다.
풀기 힘든 난점 중 하나는 뇌 전체의 신경 작용을 직접 관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뇌의 신경 작용을 개별 세포나 모세혈관 수준에서 연구하려면 두개골 절개 등 외과적 수단에 의존해야 한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ETH 취리히) 과학자들이,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뇌 미세순환의 고해상 이미지를 구할 수 있는 형광 현미경 기술을 개발했다.
살아 있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지 않고도 미세한 부위까지 생생히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이 기술에 'DOLI(diffuse optical localization imaging)'라는 이름을 붙였다.
ETH 취리히의 다니엘 라찬슈키 생체의학 영상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 광학회(The Optical Society)'가 발행하는 저널 '옵티카(Optica)'에 논문으로 실렸다.
ETH 취리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수학과를 졸업하고 교수 생활을 시작한 대학으로 유명하다.
아인슈타인(1936년 물리학상) 외에도 빌헬름 뢴트겐(1913년 물리학상), 알프레드 베르너(1915년 화학상), 볼프강 파울리(1950년 물리학상), 리처드 에른스트(2002년 화학상) 등 모두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31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 기술은 오래전부터 신경 과학이 추구해온 목표에 가까이 다가선 것으로 평가된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라찬슈키 교수는 "뇌 속 깊숙한 부위의 생물학적 작용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건 인지 기능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같은 신경 퇴행 질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형광 대조 촉진제(fluorescent contrast agent)를 혈액에 투여하고 특별한 파장의 빛을 방사하면 이 촉진제에서 은은한 빛이 난다.
형광 현미경은 이 촉진제의 발광 효과를 이용해 세포 및 분자 수준의 생리 작용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나 동물의 생체 조직이 촉진제가 내는 빛을 산란한 뒤 폭넓게 흡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지 흐릿해져 촉진제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라찬슈키 교수팀은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이런 문제점을 개선했다.
먼저 '두 번째 근적외선 윈도(second near-infrared window)'라는 이미지 스펙트럼 영역을 이용해 생체 조직의 내재 형광과 배경 산란 및 흡수를 대폭 줄였다.
최근 개발된 고성능 적외선 카메라와 '양자점(quantum dot) 대조 촉진제'를 사용한 것도 효과를 봤다. 이 촉진제는 선택된 근적외선 영역에서 강한 빛을 내는 성질을 가졌다.
연구팀은 뇌 조직의 특성을 모방한 합성 조직에 이 기술을 시험해, 종전보다 4배 깊게 투과하는 현미경 영상을 확보했다.
이어 '양자점 대조 촉진제'가 담긴 미세방울(microdroplets)을 생쥐 모델에 투여한 뒤 DOLI 기술을 적용해, 방울 하나하나의 뇌 속 위치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라찬슈키 교수는 "수술 등을 하지 않는, 완전히 비침습적인(noninvasive) 방법으로 산 생쥐의 깊은 뇌 속 미세혈관과 혈액 순환을 고해상도로 시각화한 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얼마나 깊은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시각화한 미세방울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는 DOLI 기술로 입체 영상도 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펄스 레이저(pulsed laser) 같은 복잡한 광학 기기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고 다목적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간질, 뇌졸중, 치매 등 신경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경 퇴행 등 뇌 질환의 원인을 더 잘 이해하고 조기 진단법을 개발하는 게 의료계의 매우 시급한 현안이라는 뜻이다.
연구팀은 DOLI를 기반으로 구현되는 형광 현미경 기술의 개량이 굳건한 토대가 될 거로 믿는다.
아울러 이 기술이 뇌 기능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새로운 치료 옵션의 개발도 촉진할 거라는 기대감이 높다.
ch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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