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우려에서 1년 만에 급격한 인플레 공포 커져
수요 증가에 원자재 가격 상승…이상 기후에 사이버 공격까지 겹쳐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된 지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급격한 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CNN 비즈니스는 9일(현지시간) '퍼펙트 스톰이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더 비싸게 만들고 있다' 제하의 기사에서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이 본격화하면서 거의 모든 곳에서 물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는 위력이 크지 않은 기상요인들이 함께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나타내는 상황을 말한다.
CNN은 최근의 물가 급등이 퍼펙트 스톰처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진단했다.
팬데믹 초기 상점이 문을 닫고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고 수요는 급감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의 부양책, 가계 저축 증가 등으로 수요가 반등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공장 문을 닫고 근로자들을 내보낸 기업들이 다시 인력 채용, 원자재 확보 등에 나서야 하는 만큼 수요 증가에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업종이 자동차다.
팬데믹으로 인해 자동차 업계는 지난해 자동차를 덜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반도체 주문도 줄였다.
반도체업체들은 자동차용 반도체 대신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수요가 늘어난 스마트폰과 노트북, 게임기기 등 IT업체로 물량을 돌렸다.
이후 자동차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됐지만, 반도체 공급이 부족한 자동차 업계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포드와 폭스바겐, 닛산 등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생산을 줄이거나 어쩔 수 없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이는 또다시 중고차 가격 인상 요인이 됐다.
중고차업체들은 팬데믹 초반 재정을 위해 수천 대의 차량을 판매했지만, 이제는 다시 차량 구입 수요를 확대하고 있다.
저금리와 부양책으로 인해 가계는 더 쉽게 차량을 구하려는 욕구를 갖게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대중교통과 카풀 등을 가급적 피하려는 점도 차량 구매 수요 증가의 한 요인이다.
미국에서 4월 기준 중고차 및 트럭 가격은 전달 대비 10% 이상 급등하면서 1953년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21% 올랐다.
이는 미국 소비자 물가의 전반적인 상승 요인이 됐다.
경제 회복으로 소비자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가격이 올랐고, 녹색기술에 대한 투자 붐은 알루미늄과 구리 등의 금속 가격 상승을 유발했다.
전기차업체인 테슬라는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모델3의 가격을 2천 달러(약 220만원) 인상했다.
자동차와 주택, 가전제품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철광석과 구리, 철 가격은 최근 수 주간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각종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 변화를 추적하는 블룸버그 원자재 현물 지수는 최근 1년간 약 60% 상승했다.
기업들은 물품을 다시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팬데믹 기간 줄어든 선적 컨테이너, 항구 등에서 각종 장애는 제품 수송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 3월 수에즈 운하에서 대형 컨테이너선이 좌초하면서 만 엿새간 운하 통항이 중단됐고, 이후 해상운임은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서 해커들의 사이버공격은 물가 상승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최대 송유관 운영사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해커단체 '다크사이드'의 랜섬웨어 공격을 받으면서 미국은 휘발유 공급에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
미 동부 해안 일대에 공급되는 석유 45%를 책임지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멈춰서자 당시 시민들은 사재기에 나서는 등 큰 혼란이 벌어졌다.
지난달 말에는 세계 최대 정육업체 중 한 곳인 JBS SA가 사이버보안 공격을 받아 호주와 북미의 일부 작업장 운영이 중단됐다.
JBS는 곧 작업장 운영이 정상화됐다고 밝혔지만, 이번 혼란이 정육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뭄으로 인해 브라질과 태국, 유럽은 곡물 생산에 타격을 받았고,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출물량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달까지 12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1년 전 대비 40%가량 올랐다.
제품 가격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만 이미 네슬레와 유니레버 등의 식품업체는 특정 품목의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몇몇 산업에서의 노동력 부족은 기업들의 임금 인상 압박 요인이다. 특히 유럽에서 이같은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기업이 임금을 올리면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이는 또다시 인플레이션 요인이 돼 임금 상승을 압박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CNN 비즈니스는 최근의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팬데믹의 일시적 부산물일지, 아니면 기업 비용의 영구적 상승요인이 되면서 인플레이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고 전했다.
다만 지금 확실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다시 돌아왔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ING의 원자재 전략 담당 수장인 워런 패터슨은 "그야말로 진짜 퍼펙트 스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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