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 1·2호기 운영허가 지연…고리 2호기는 연장신청 못 해
체코 원전수주 총력전에 미국 신재생 사업도 확장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탈(脫)원전 정책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주요 국내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신에 높은 기술력을 앞세워 원전 수출에 주력하고 신재생에너지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미국에서 관련 사업을 키우는 등 해외로 눈을 돌려 활로를 찾는 모습이다.
◇ 운영 허가 지연·준공 연기…잇달아 사업 차질
13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의 신한울 원전 1호기는 완공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로부터 아직 운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원안위는 심의에 착수한 지 7개월 만인 지난 11일 회의를 열어 운영 허가 안건을 논의했다. 그러나 한수원이 서류 변경이 필요하다고 요청함에 따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후 회의에 재상정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서류상 미비로 원안위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1년 이상 심의가 길어진 결정적인 원인은 일부 위원들이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원안위는 지금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운영 허가 관련 보고를 받았다. 신고리 4호기가 8차례, 신월성 2호기가 6차례 각각 보고가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원전 산업계는 원안위에서 제기된 쟁점들이 기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며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운영 허가가 미뤄지자 일각에서는 탈원전 정책 때문에 친정부 성향의 위원들이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신한울 2호기도 현재 공정률이 99%로 바로 가동이 가능한 상태지만, 운영 허가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신한울 1·2호기의 당초 가동 예상 시점은 2018년 4월과 2019년 2월이었다. 울진군과 경북도가 자체 분석한 자료상 운영 허가 지연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총 6조6천억원에 이른다.
한수원은 2년 뒤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여부도 확정하지 못했다.
감사원 지적에 따라 수명 연장을 신청하기에 앞서 '경제성 평가 지침'을 마련해야 하는 절차상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9월까지 경제성 평가 지침을 마련한 뒤 안전성 평가 보고서 제출과 수명 연장 신청을 최종적으로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신고리 5·6호기는 내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여파로 준공이 각각 1년, 9개월 지연됐다. 한수원은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정 일정을 현실화하고 사고 가능성이 높은 야간작업을 지양하기로 했다.
공정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35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까지 투입된 사업비는 5조3천억원이다.
신한울 3·4호기 사업은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한수원은 올해 사업보고서에서 "신한울 3·4호기가 정부 권고안에 따라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며 사업에 투입한 비용을 손실로 처리했다.
◇ 원전 수출·해외 신재생 사업으로 활로 모색
국내에서 여러 어려움에 부닥친 한수원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우선 내년에 진행되는 체코 원전 본입찰을 위해 하반기부터 수주 총력전에 돌입한다.
체코는 두코바니 지역에 8조 원을 들여 1천∼1천200MW(메가와트)급 원전 1기 건설을 우선 추진 중이며 한국과 미국, 프랑스가 현재 수주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수주 지원을 위해 체코 정부와 고위급 회담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 역시 그간 체코 현지에서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 경제성, 바라카 원전 사업의 성공적 사례를 적극 설명하며 '세일즈' 활동을 해왔다.
한수원은 폴란드 원전 수주전도 준비하고 있다. 폴란드는 약 44조원을 들여 6천∼9천㎿ 규모의 원전 6기를 2040년까지 차례로 건설할 예정으로, 미국과 프랑스 등이 관심을 보인다.
이외에 러시아가 건설하는 이집트 엘다바 원전의 터빈건물, 옥외시설물 등 2차측 분야 EPC(설계·조달·시공)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이집트 현지 파트너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협력 논의 차 지난 3월 이집트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안전성과 높은 활용성으로 최근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도 주력한다. 후속 모델까지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향후 소형원전에 관심을 보이는 중동 지역으로 수출길이 넓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미국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본격적으로 확장한다.
한수원은 국내 금융기관과 손잡고 미국 루이지애나 수력발전소(192㎿급)의 지분 인수를 추진하기로 최근 이사회에 보고했다.
현지에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진행해 사업비를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8월 알파자산운용, 스프랏 코리아,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과 컨소시엄을 꾸려 미국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브룩필드 리뉴어블과 인베에너지 사(社)로부터 대형 육상풍력 발전단지 4곳의 지분 49.9%를 양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일리노이와 텍사스에 총 850㎿ 이상의 발전소를 확보했다.
정재훈 사장은 최근 열린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기존 핵심사업인 원전 경쟁력의 토대 위에 신재생, 해외사업, 수소 등 다양한 청정 에너지원을 갖춘 친환경 종합에너지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br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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