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장들 "범죄 파도 몰려올지도"…실업·봉쇄 따른 불만 폭발할 수도
항공·호텔·식당·여행업계선 직원 못구해 손님 못받아…인플레 공포도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미국이 총기 폭력과 물가 불안, 구인난 등 예상하지 못한 걸림돌을 만나 고전하고 있다고 CNN 방송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체 인구의 45.2%인 1억5천만여명이 백신 접종을 마친 미국은 곳곳에서 상점·식당의 영업을 정상화하고 사람들이 여행·외출을 재개하는 등 탈(脫)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문화적 번영기였던 '격동의 20년대'로 빠르게 전환할 것이란 희망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가운데 외려 '충격과 공포의 팬데믹'이 사회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꿔놓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이 매체는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례로 '코로나19로 분열된 국가'라는 시나리오가 새로 부상하면서 이미 있었던 정치적 분열과 적대를 더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신을 접종한 민주당 성향의 주(州)와 회의적인 공화당의 보루 사이에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CNN은 가족 재회의 기쁨, 뒤늦게 치르는 결혼식, 여행하고 싶은 욕구, 도시 고속도로를 정체시키며 돌아온 차량 등은 나라가 잠에서 다시 깼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도 이런 일들이 총기 난사 사건 같은 '미국적 의례'와 동시에 복귀하고 있다고 짚었다.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풀리고 날씨는 더워지면서 많은 도시가 총기 범죄, 폭력, 살인 등의 증가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영리 연구단체 총기폭력 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최근 두 차례의 주말에 미국에서는 10건씩의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지난 주말에는 9개 주에서 10건의 총기 난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최소한 45명이 부상했다.
올해 들어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293건으로 집계됐다.
전국의 경찰서장들은 여름이 되면 범죄의 파도가 몰려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1년 전 코로나19 환자로 가득 찼던 병원 응급실은 미국의 또 다른 '전염병'인 총기 폭력 희생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뉴욕의 5월 총격 사건은 작년 5월보다 73% 증가했고,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소매점 직원이 마스크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 총에 맞아 숨졌다.
CNN은 수개월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억눌린 불만과 그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총기가 만연한 사회와 결합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지 의문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부문에도 불확실성이 스며들고 있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최근 "일자리가 늘고 있고, 임금도 역시 상승하고 있다"며 경제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는 이전의 경제 위기 직후 본 것과는 다른 독특한 현상을 겪고 있다. 백신을 맞은 손님들은 식당으로 몰려드는데 종업원이나 주방장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직원들은 다른 업종으로 옮겨갔고, 어떤 이들은 정부의 후한 실업수당에 의존하고 있다.
또 수백만명이 항공기를 타고 여행길에 오르지만 항공사는 조종사 부족이나 정비 문제 등으로 항공기를 띄우지 못하고 있다. 아메리칸항공은 최근 승무원 부족 등을 이유로 들어 7월까지 항공편 수백 편을 취소했다.
호텔·관광·여행업계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미국호텔숙박협회(AHLA) 최고경영자(CEO) 칩 로저스는 "15개월간 우리는 손님을 찾으려 애썼다"며 "이제 손님이 돌아왔고 여행업은 정말 잘 되는데 많은 주요 지역에서 종업원을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커다란 도전"이라고 말했다.
로저스 CEO는 또 설령 힘겹게 직원들을 구한다 해도 사무직들의 출장 여행이 회복되지 않는 한 코로나19 이전의 활기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의 시대에는 큰 대회나 행사, 이벤트로 인한 여행이 과거와 다를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경제 각 분야에서 수요는 폭증하고 있지만 글로벌 무역 장애로 인한 공급망의 문제는 인플레이션 공포를 악화시키고 있다.
팬데믹으로 불가피하게 도입된 재택근무로 여전히 많은 직장인이 집에 머무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사무실로 아예 돌아가지 않기로 할 수도 있다. 이는 도시의 대중교통 체계나 서비스 산업에 큰 파급효과를 낳을 전망이다.
CNN은 유럽의 흑사병이나 1918년 스페인 독감 같은 과거 공중보건 위기는 정치적 변화와 불안을 촉발하고 기존의 사회적 균열을 심화시켰다고 진단했다.
비근한 사례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일으킨 정치적 연쇄 반응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같은 대중 영합주의자의 발호를 낳았다는 것이다.
CNN은 이번 위기는 이보다 훨씬 더 깊었고 모든 미국인 각자에게 영향을 끼쳤다며 회복으로의 여정은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애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sisyph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