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시민단체의 폭로에 이은 경찰 수사로 드러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행각은 4·7 재보선에서 여당에 참패를 안길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이끄는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28일 기자 간담회에서 "LH 직원들과 그 친척·지인 등 수십 명이 부동산 개발회사를 별도로 설립해 조직적으로 투기한 정황을 확인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 본부장은 "법인을 만들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을 많이 매입한 점이 확인됐다"면서 "해당하는 땅은 3기 신도시일 수도 있고 그 외 지역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건과 LH 전·현직 직원들이 공인중개사와 결탁해 성남 지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투기한 정황을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 중이며 일부 의혹 연루자에 대한 소환조사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겠지만, 남 본부장의 간단한 언급만으로도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지난 3월 2일 기자회견에서 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 개발지의 땅을 대거 사들인 것을 폭로하면서 직무상 정보를 활용한 투기 의혹을 제기한 이후 경찰 수사에서 LH 전·현직 직원들과 이들의 지인, 친인척이 전국 곳곳의 개발 예정지 땅에 투기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행위들도 용납받지 못 할 일이지만, 개발 계획의 수립부터 토지 수용, 택지 조성, 분양에 이르기까지 신도시를 포함한 택지개발 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LH 직원들이 별도로 회사까지 만들어 투기했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공직자에 준하는 신분으로 단순히 직무상 얻게 된 정보를 활용해 사익을 취하는 정도를 넘어 체계적, 조직적으로 범죄 수익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LH를 두고는 예전부터 각종 개발 사업과 관련한 권한이 지나치게 크고 직무상 취득한 정보의 통제가 느슨하며 외부 업자와의 유착을 규제하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종종 제기돼 왔지만, 큰 비리 사건이 불거졌을 때 잠깐 떠들썩할 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이번 'LH 사태'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겠다.
또다시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도록 경찰은 LH 전·현직 임직원 77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수사선상에 오른 3천명 이상의 투기 용의자들에 더해 새롭게 불거진 의혹의 연루자들도 철저히 수사해 범법 사실이 드러나면 엄중히 조치하고 불법 수익에 대한 환수에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이 같은 비리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기를 당부한다. 정부는 지난 7일 LH의 기능과 인력을 과감하게 축소하고 취업제한 대상자를 현재 임원에서 2급 이상 고위직 전원으로 대폭 늘리며 퇴직자가 소속된 기업과의 수의계약을 제한하는 한편 퇴직자의 현직 직원 접촉이나 회사 방문을 제한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개발이익 사유화 근절'과 '공공성 강화'라고 하는 핵심적인 방안이 결여됐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부동산 개발회사를 통한 투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비리가 불거지는 것을 보면 이 정도의 개혁으로 날로 정치해지는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관장하는 LH 임직원들에게는 직책과 정보를 활용한 사익 추구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문제가 불거진 후 대처에 못지않게 '이해충돌'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대책을 좀 더 심도 있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택지개발을 비롯한 대규모 개발사업에 관한 권한과 정보를 국가나 공공기관이 틀어쥐고 법적·행정적 강제력까지 동원해 밀어붙이는 개발 시대의 시스템이 비리가 파고들 여지를 확대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 집값 안정이 최대의 과제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의 본류는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소외 계층의 주거 복지와 같은 공공의 역할에 집중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비리의 가능성도 훨씬 줄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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