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홍지인 기자 = 오늘날 기업가치가 18조원에 달하는 게임업계 대장주 엔씨소프트는 창업 당시엔 게임 회사가 아니었다.
한글, 한메타자교사 등 프로그램을 개발한 김택진 대표가 1997년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는데, 초창기에는 HTML 편집기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팔았다.
김 대표가 넥슨을 박차고 나온 송재경을 영입해 이듬해 출시한 게임이 바로 '리니지'고, 이 게임은 엔씨소프트는 물론 대한민국 게임 업계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리니지' 시리즈가 PC와 모바일에서 연이어 워낙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그와 비슷한 게임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것이 단적인 사례고, 이는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대형 게임업체들이 막대한 자본력과 개발력을 쏟아부어 최근 내놓은 신작이 단순히 다중접속임무수행게임(MMORPG)이라는 장르의 유사성을 넘어 하나 같이 '리니지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은 눈여겨볼 만하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가 상반기 잇달아 출시한 신작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게임 개발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국내 게임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이른바 '빅3' 대작으로 꼽혔다.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은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북유럽 신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하고 화려한 그래픽과 멀티 플랫폼 기능 등을 갖춰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과금 구조를 비롯한 사업모델(BM)은 이용자들로부터 '북유럽 스킨을 씌운 리니지'라는 평가를 자아냈다.
넷마블의 '제2의 나라 : 크로스 월드'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걸작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일본 지브리의 그래픽과 거장 히사이시 조가 만든 음악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경험치를 올려주는 유료 아이템, 자동사냥 기능 등 역시 '어디서 많이 본' 요소가 잇달아 발견되면서 '지브리니지', '리니지브리' 등 별명이 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니지2 레볼루션' 개발진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한다.
이 부문의 '종가' 엔씨가 만든 '트릭스터M'은 아예 처음부터 '귀여운 리니지'라는 콘셉트를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이에 국내 게임 차트에는 터줏대감인 리니지M과 리니지2M을 필두로 5개의 리니지가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온다.
이처럼 '유사 리니지'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리니지 특유의 과금 구조를 바탕으로 사업모델이 국내에서 이미 확실히 검증됐기 때문이다. 제작사로서는 굳이 새로운 시도로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정적 수익원에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리니지'와 '유사 리니지'가 점령한 국내 게임 산업 구조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때 국산 게임을 베낀다는 조롱을 받던 중국 게임업계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개발 및 투자에 나서면서 이제 '청출어람'의 기미를 보인다.
'리니지'류의 게임은 해외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 '제2의 나라'의 경우 2일 기준으로 국내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 4위, 애플 앱스토어는 3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발매 첫날 애플 앱스토어 매출 순위 6위에 반짝 올랐다가 지금은 34위에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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