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위안화] ③ 남 둥지에 알 낳듯…민간 빅테크 '올라타기'

입력 2021-07-09 07:07  

[디지털 위안화] ③ 남 둥지에 알 낳듯…민간 빅테크 '올라타기'
'공공재' 명분으로 알리바바 등 구축한 인터넷 생태계 활용
징둥·디디추싱·메이퇀 등 폭넓게 사용 가능…단숨에 10% 점유율 관측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e-CNY)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새 법정 디지털 화폐가 독자적인 인터넷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이라는 난관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면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중국의 전자결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즈푸바오·支付寶)와 텐센트의 위챗페이(웨이신즈푸·微信支付)가 중국의 인터넷에서 각자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한 지급결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디지털 위안화를 온라인에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었다.

◇ 전자상거래서 차량호출까지…온라인 파고드는 디지털 위안화
그런데 중국 당국은 이 난제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독자 생태계를 만드는 대신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빅테크(대형 IT기업)들이 구축해놓은 생태계에 올라 타버린 것이다.

연합뉴스의 취재 결과, 현재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가능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은 징둥(京東), 디디추싱(滴滴出行), 메이퇀(美團)과 어러머(餓了?), 허마셴성(盒馬鮮生), 순펑(順豊), 셰청(携程·트립닷컴) 등 20여 곳에 이른다.
업종별로 보면 전자상거래, 슈퍼마켓, 차량 호출 서비스, 음식 배달 서비스, 여행·항공, 택배, 공공요금 납부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생활 영역을 망라하는 수준이다.
현재 디지털 위안화 시험에 참여 중인 이들은 이들 앱에서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다.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托卵)을 연상케 하는 이런 전략을 통해 디지털 위안화는 단숨에 중국 인터넷 생태계에서 주류 지급결제 수단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을 열 수 있는 협력 은행에 처음으로 국유은행이 아닌 민간 은행인 왕상은행(網商銀行·MYbank)을 추가했다.
이 인터넷 전문 은행은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알리바바의 앤트그룹 산하에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디지털 보급을 위해 알리바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듯 인민은행이 선택한 협력 인터넷 서비스 중에는 음식 배달 서비스 어러머와 온·오프라인 온·오프라인 슈퍼마켓인 허마셴성 등 알리바바 계열 서비스가 다수 포함됐다.
실제 인터넷에서 결제할 때 디지털 위안화를 쓰는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디지털 위안화 시험에 참여 중인 사람이 인터넷 앱에서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우선 이용자가 디지털 위안화 앱을 켜고 협력 서비스 페이지에 들어가 목록에서 허마셴성을 선택한 뒤 결제 활성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 뒤 허마셴성 앱을 열자 디지털 위안화가 지급결제 가능 목록에서 추가로 나타났다.
사용 방법은 기존에 주로 쓰던 알리페이 똑같았다. 몇몇 제품을 고르고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하겠다는 버튼을 누르자 안면 정보를 읽는 페이스 아이디 확인을 거쳐 순식간에 결제가 끝났다.

◇ '알리바바 슈퍼'서 알리페이 아닌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
디지털 위안화가 민간 빅테크가 심혈을 쌓아 구축한 생태계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공공재'라는 명분 덕분이다.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 역시 지폐나 동전으로 된 기존의 위안화 현금처럼 '법정 통화'로 규정한다.
중국의 법령상 상업 거래 과정에서 누구도 법정 통화를 받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빅테크 업계는 크게 알리바바와 텐센트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알리바바 계열사이거나 알리바바로부터 투자를 받은 플랫폼들이 위챗페이 결제를 거부하고 반대로 텐센트 진영은 알리페이 결제를 거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는데 어느 인터넷 사업자도 자기 플랫폼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배타적으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인민은행은 공식적으로 법정 화폐인 디지털 위안화와 민간 지급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위챗페이는 기본적으로 위상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위안화에 관한 중국의 가장 권위 있는 '스피커' 중 한 명인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디지털 화폐 연구소장은 지난달 상하이 금융 포럼에서 "디지털 위안화와 알리페이, 위챗페이는 경쟁자가 아니다"라며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은 디지털 통화 사용을 위한 IT 인프라"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디지털 위안화는 공공재로 간주되기에 서비스에 관여한 사업자들이 수수료를 받는 등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도 없다.
일례로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 간의 이동에는 수수료가 일절 부과되지 않는다. 사용자들이 은행 계좌에서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을 돈을 보내는 '충전'을 하거나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의 돈을 자기 계좌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은행 송금에서부터 신용·직불카드 거래, 온라인 결제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급결제 서비스망을 구축했거나 이에 관여한 금융 기관들은 서비스 제공 대가로 일정한 수수료를 받았는데 디지털 위안화와 관련해서는 '국가의 대의'에 따라 '무료 봉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위안화가 인터넷 공간에 공격적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은 작년 10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의 당국 정면 비판을 계기로 중국 당국이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금융 분야에서 영향력을 축소할 것을 요구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은 '반독점'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명분으로 내세워 인터넷 기업들에 대대적 규제를 가하면서 거대 인터넷 기술기업들이 자기 진영 중심의 장벽을 쌓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중국 안팎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이른 시일 안에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을지를 두고 예측이 다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이미 알리페이 못지않은 편리성과 확장성을 갖추고 있어 생각보다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굳이 중국 이용자들이 익숙해진 알리페이를 버리고 디지털 위안화로 갈아탈 뚜렷한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다만 국가가 한번 정책의 방향을 정하면 모든 힘을 동원해 밀어붙이는 중국의 정치체제의 특성상 디지털 위안화가 공식 사용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확산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 지급결제 시장에서 단기간에 10% 이상 비중의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작년 보고서에서 오는 2030년 디지털 위안화의 연 소비지출 규모가 19조 위안으로 중국 내 지급결제의 15%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하이의 예랑캐피털의 왕펑 회장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무창춘 소장은 법정 통화로서의 디지털 위안화의 역할을 확실히 규정했다"며 "(알리페이 같은) 민간 지급결제 서비스는 비록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그들은 중앙은행에 지배되는 금융 서비스 제공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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