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보험업계 실손보험 비급여 누수 방지 TF 가동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중학생 B군(15)은 과천시의 한 의료기관에서 최근 3년 간 도수치료 122차례를 받고 진료비 2천800만원을 실손의료비보장보험(실손보험) 보험금으로 받아 갔다. 의학적으로(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의) 도수치료는 근골격계 해부학적 지식을 가진 시술자가 손으로 근골격계질환(급만성 경요추부 통증, 척추후관절증후군) 등에 시행하는 의료행위다. 그러나 B군은 아무런 근골격계질환이 없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청소년이 도수치료를 받으면 키가 클 수 있고 체형이 교정된다는 과장광고가 블로그 등에 성행하는 것을 보면 중고생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무분별하게 도수치료를 시행하는 일부 의료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도수치료가 의학적 기준과 무관하게 소아청소년과나 피부과, 심지어 의과가 아닌 치과에서 행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대 남성이 산부인과에서 도수치료를 받는가 하면 53세 남성은 치과에서 같은 항목으로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식이다.
내년 초부터는 도수치료와 영양주사 등 '과잉진료' 우려가 큰 비급여 진료 항목의 실손보험 보험금 심사가 강화돼 무분별한 청구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가 비급여진료 심사 강화 등을 담은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누수 방지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달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당국·업계TF가 추진하는 비급여 보험금 누수 방지 방안의 핵심은 과잉진료 항목을 발굴하고 항목별 심사 강화 방안을 마련, 보험업계가 공동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주요 과잉진료 항목은 ▲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기준을 초과한 영양제·비타민제(주사제) 투여 ▲ 근골격계질환이 아닌 질환에 과다·반복 시행하는 도수치료 ▲ 65세 이하 연령대에 다초점 백내장 다수 시행 ▲ 갑상선고주파절제술, 티눈 냉동응고술 반복 시행 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보험금 지급이 최근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항목이다. 예를 들어 백내장 관련 보험금(손해보험 14개사 기준)은 2018년 2천553억원에서 지난해 6천480억원으로 불었다.
당국과 업계는 각 항목의 세부 심사 기준을 수립하면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산재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의 심사기준, 법원 판례, 분쟁조정 사례, 심평원 해석 사례 등을 반영하기로 했다.
원칙적으로는 객관적인 의학적 근거를 통해 치료목적이 확인되고, 보건당국의 허가 범위 내에서 진료가 이뤄져야 보험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당국·업계TF는 다음 달 말까지 과잉진료 항목 발굴과 심사 강화방안 초안을 마련하고, 전문가와 소비자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초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 '실손 가입자는 정액지급 상품 중복가입 제한' 추진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이번 대책이 무분별한 비급여와 과잉진료를 막아 대부분의 실손보험 계약자의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한 조처라고 강조했다.
비급여 진료를 사실상 무제한 받을 수 있는 '1세대' 구(舊)실손보험은 심각한 손실로 인해 2년 연속으로 20% 내외 보험료 인상률이 적용됐고, 내년에도 비슷한 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3∼5년 갱신 주기가 도래해 보험료가 2∼3배 오른다는 보험사의 예고에 놀란 가입자 불만도 급증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그동안 비급여 보험금 누수 차단보다는 대대적인 보험료 인상으로 대처한 면이 있다"며 "이번 대책은 보험사가 대다수 가입자의 보험료를 제대로 관리해야 할 책무를 다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업계TF는 비급여 진료 심사 강화와 함께 실손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수술 또는 입원에 정액 보험금을 지급하는 각종 건강보험상품의 가입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입원 1일당 또는 수술 1회당 정액 보험금을 주는 상품이 갑상선고주파절제술 등 비급여 수술을 부추긴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액형 보험을 여러 개 가입하면 여러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중복으로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태는 공보험의 재정도 갉아먹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명보험 가입 심사 때 기존 가입이력을 확인해 과도한 계약을 제한하듯이 실손보험 계약자는 과도한 정액형 담보(보험금)를 가입하지 않도록 제한하자는 데 업계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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