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라비다] 숨은 영웅 한분이라도 더…참전용사 찾아 멕시코 누빈 국방무관

입력 2021-07-12 07:22  

[비바라비다] 숨은 영웅 한분이라도 더…참전용사 찾아 멕시코 누빈 국방무관
김윤주 무관, 지난 1년간 주멕시코 대사관과 함께 참전용사 찾기
"'가장 행복한 날'이라던 노병 눈물에 울컥…인연 이어지길"


[※ 편집자 주 : '비바라비다'(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김윤주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국방무관(육군 중령)은 지난 1년간 멕시코 전국 곳곳을 누볐다.
출장길에 오를 때마다 빳빳하게 다린 정복을 갖춰 입고 태극기가 들어있는 자개 액자, 홍삼과 마스크 등을 잔뜩 챙겼다.
70여 년 전 먼 한반도로 건너와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멕시코 6·25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만나 뒤늦은 고마움을 전하는 여정이었다.
4년간의 멕시코 근무를 마치고 곧 귀임하는 김 무관은 지난 6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욕심 같아서는 멕시코 전체 32개 주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모두 다니며 한 분이라도 더 찾아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무관의 '숨은 영웅' 찾기는 꼭 1년 전인 지난해 7월 시작됐다.
지난해 6·25 70주년을 맞아 브루노 피게로아 주한 멕시코 대사가 서울에서 외교부 세미나를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멕시코 참전용사들을 소개했다.
멕시코는 참전 16개국에 포함되지 않지만, 당시 180만 명의 미군 참전용사 중엔 멕시코인이나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주한 멕시코대사관이 파악하고 있던 생존 참전용사 두 명을 만난 후 주멕시코 한국대사관과 김 무관은 멕시코 내에 숨어있는 더 많은 참전 영웅들을 찾아내기로 했다.
참전용사를 찾는 포스터를 만들어 현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렸다. 유튜브 영상도 만들고 현지 언론을 통해서도 한국 정부가 멕시코 노병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지난 1년간 김 무관이 현지 TV, 라디오, 신문 등과 한 인터뷰만도 10번이 넘는다.

"유카탄주 출장을 갔을 때 지역 방송에 인터뷰를 먼저 제안했더니 스튜디오로 바로 부르더라고요. '멕시코에서도 흥미를 갖는 소재구나' 자신감이 생겨서 이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죠. 처음엔 스페인어 대본을 준비해서 읽는 수준이었다면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능숙해졌습니다."
참전용사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전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멕시코 남성의 기대수명은 75.1세로, 우리나라(80.3세)보다 짧다.
그럼에도 대사관과 김 무관의 적극적인 노력 속에 지금까지 생존 참전용사 5명과 작고 참전용사 5명이 유족이 확인됐다. 지난 4월 24일 마침내 멕시코 참전용사회가 결성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초대 회장인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이 세상을 떠나 생존 노병은 4명으로 줄었다.
제보를 받고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참전용사 한 명 한 명의 존재가 확인될 때마다 김 무관은 달려가 한국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 고마움을 전했다. 작고한 참전용사의 묘소에 헌화하고 유족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70년 만에 찾아온 한국 군인을 반겨주며, 거꾸로 고마워했다.

이들을 만나며 김 무관이 눈물을 쏟을 때도 많았다.
"과달라하라에 거주하시는 로베르토 시에라 바르보사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 감사의 메시지를 다 읽기도 전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명예로운 날'이라며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비야레알 회장님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달려갔을 땐 관 속에 누워계신 회장님이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며 표정으로 위로하시는 듯해 감동을 받았죠."
우리는 비록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참전용사들은 한국을 잊지 않았다.
"몬테레이에 사시는 헤수스 칸투 살리나스 할아버지는 1983년 멕시코에서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열렸던 때를 기억하시더라고요. 당시 몬테레이에서 한국과 브라질의 4강전이 열렸는데 경기장 전체에서 할아버지만 혼자서 목이 터져라 한국을 응원하셨대요."
당시 조별리그에서 멕시코를 꺾은 한국 대표팀이 미울 법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청춘을 바친 한국의 4강 신화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정부의 참전용사 찾기에 멕시코 정부도 관심을 보였다. 멕시코 국방부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6·25 참전용사들에 관심을 나타내며, 참전용사회 결성엔 국방장관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후손들도 한국에 더 관심을 갖는 등 전장에서 피로 맺은 인연은 앞으로의 양국 관계에도 빛을 비추고 있다.
그야말로 '찾아가는 보훈 활동'으로 한국과 멕시코의 70년 전 인연을 되살린 김 무관은 이를 통해 양국을 관계가 더 돈독해지길 기원했다.
"비야레알 할아버지의 증손자는 한국에 유학 가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어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알마다 옹의 따님은 한국 음식 영상을 보내셨더라고요. 가족 전체가 한국과 친구가 됐죠. 이 인연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랍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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