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합의는 실적 아닌 과정…최소 10년, 17조원 필요 예상"
(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유럽 내 북한통으로 꼽히는 글린 포드 전 유럽연합(EU) 의원은 북한이 북미협상 재개 가능성을 일축한 이유로 미국의 엇갈리는(mixed) 대북 메시지를 꼽았다.
영국 노동당 소속 국제위원이자 유럽의회 국제무역외무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한 포드 전 의원은 약 50차례 북한을 다녀왔고 2018년 9·9절 열병식에도 참석한 '북한통'이다.
베를린자유대 특강 차 독일을 찾은 포드 전 의원은 13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검토해 개편했다고 하는데 행정부 내 일부는 새 대북정책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하는 싱가포르 합의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고, 다른 일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이 보기에 둘 사이에는 매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서 "북한에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에너지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서 봤을 때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민간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의미고, 북한의 비핵화는 이를 할 수 없다는 의미"라면서 "여기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는 2019년 하노이회담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이기도 했다"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모두 포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자급자족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으면 경수로를 건설해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지만, 이를 포기하면 외부에서 연료를 들여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이란처럼 원자력 발전을 위해 저농축 우라늄 생산시설을 유지하고 싶어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협상테이블 복귀 시점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명확한 입장을 정한 이후가 될 것"이라며 "올해 연말께 돌파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포드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협상 재개 등 진전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한반도 비핵화가 실적(performance)이 아닌 과정(process)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효력을 발휘했는데, 이번 비핵화 합의는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워싱턴과 서울에 적어도 1∼2개 정권이 더 지나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북한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복원되는지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JCPOA는 2015년 이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과 독일 등 6개국과 맺은 것으로, 이란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직 당시 합의를 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한 합의로, 만약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원래와 유사하게 복원한다면 북한에는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포드 전 의원은 설명했다.
포드 전 의원은 "제네바 합의 때 45억 달러(약 5조원)가 들었는데, 이번에는 150억∼200억 달러(약 17조∼23조원)는 들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네바 합의 때처럼 한국과 일본, EU 등이 기여해야 할 텐데, 일본이 문제"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핵 무력과 관련해서는 "북한은 단거리와 중거리 핵미사일은 보유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본토를 위협할 폭발력이 있는 미사일과 로켓, 재진입 기술, 미사일 유도 시스템을 보유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한지에 관해서는 "북한을 샅샅이 뒤지면서 그 어느 곳에도 소형 핵무기조차 남아있지 않은 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최소한의 신뢰를 기반으로 현실성 있게 북한의 핵무장을 최소한으로 약화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향후 한반도 비핵화 합의에 EU의 참여 확대 문제에는 "북미와 남북이 기본 축이고, 중국도 역할을 하겠지만, EU나 일본, 러시아는 제역할을 하기보다는 공헌을 해야 하는 쪽이다. 어차피 공헌하게 될 텐데 이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협상에 참여하는 게 유리하다"고 답변했다.
이밖에 포드 전 의원은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현황과 관련해서는 "북한은 아주 초기에 봉쇄하고, 아무것도 국경을 통과하게 놔두지 않았기 때문에 확진자 수는 매우 적을 것"이라며 "다만, 이로 인해 치러야 할 경제적 비용이 매우 클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북한이 언제 다시 국경을 열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는 게 문제"라면서 "통상 북한과 같이 감염자 수를 제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호주나 뉴질랜드, 중국 등은 백신 접종률을 크게 높인 뒤에야 문을 여는 게 가능한데, 현재 북한에는 백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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