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화이자 백신 구매 합의…말레이는 화이자 접종 주력
외교관계 고려해 중국 백신 비판은 자제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서구권에서 개발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올해 하반기 들어 중국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사용을 줄이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 2억7천만명의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은 15일(현지시간)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으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12세 이상에게 접종할 수 있도록 긴급 승인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올해 화이자 백신 5천만 회분을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또 인도네시아 보건부는 이달 9일 시노백 백신의 접종을 완료한 의료인들에게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을 부스터샷(효과를 보강하기 위한 추가 접종)으로 접종한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상반기에는 중국 제약사 시노백의 코로나19 백신을 주로 접종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15일 시노백 백신과 관련해 기존에 들여온 물량을 다 쓰면 사용을 중단한다며 앞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에 주력한다고 발표했다.
아드함 바바 보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화이자 백신 4천500만회를 확보했기에, 인구 3천200만명의 70%(2천240만명)를 접종하는데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시노백 백신에 많이 의존한 필리핀도 지난달 화이자 백신 4천만 회분을 수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필리핀은 6월 말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1차분을 공급받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이런 행보는 중국의 '물백신'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목된다.
시노백, 시노팜 등 중국 업체들이 개발한 백신 세계보건기구(WHO)의 긴급 승인을 받아 아프리카와 동남아, 남미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접종되고 있다.
중국산 백신은 저렴한 가격과 보관·운송의 편의성을 앞세워 시장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이 개발한 백신들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브라질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시노백 백신의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50% 정도에 그친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인도네시아, 태국에서는 시노백 백신을 맞은 의료인들이 대거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효능을 둘러싼 의구심이 커졌다.
또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달 초 시노백 백신 인도네시아 임상시험 책임자가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산 백신으로 눈을 돌린 것은 중국 백신의 효과 논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은 그동안 중국과 외교 마찰, 백신 기피 현상 등을 우려해 중국산 백신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WSJ은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는 전염력이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의 영향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지만, 백신 접종은 저조하다.
인도네시아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인구는 전체의 6%에 불과하고 말레이시아(13%), 필리핀(4%)도 이 비율이 낮다.
국제사회에서 백신 수급 상황도 이들 국가의 노선 변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백신을 선점했던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에서는 많은 사람이 이미 백신 접종을 마쳤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이 개발한 백신이 더 많은 나라에 전달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미국 정부는 올해 중 저소득 국가들에 화이자 백신 2억 회분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의 이안 총(莊嘉穎)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부족과 비축 현상이 조금 완화하면서 여러 국가가 모더나나 화이자 백신을 구매하기를 원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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