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정책 중심에 인권·민주주의…"고통스럽지만 정직함이 비판자 무장해제"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전 세계 미 외교관들에게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을 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 이 과정에서 미국의 결함을 인정해도 좋다는 지침을 전달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블링컨 장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전 세계 미 대사관에 보낸 장문의 외교전문에서 이런 지시를 담았다고 보도했다.
블링컨 장관은 전문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전 세계적으로 보호되고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맞고 국가안보를 강화한다"며 이는 미국에 가까운 나라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가 포퓰리스트와 독재 세력의 도전에 직면했다며 미국 역시 정치적 양극화와 허위정보,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 때문에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외교관들을 향해 "우리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나라에 요구해선 안 된다"며 "이는 우리의 결함을 인정하고, 양탄자 밑으로 쓸어 넣어 숨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런 태도가 고통스럽고 심지어 추악할 수도 있지만 정직함이 미국의 리더십을 깎아내리기 위해 미국의 결함을 활용하는 비판자와 회의론자를 무장해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구체적인 국가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종 차별 등을 문제 삼아 자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미국의 비판을 반박해온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일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은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가까운 파트너 국가라고 하더라도 균형과 수위 조절, 타협의 필요성은 있겠지만 인권 문제 자체에 관한 우려 제기를 멈출 순 없다고 말했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이 기조가 장기적으로 미국을 더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 것이라며 각 상황에서 어떤 전술이 최선일지는 사례별로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외교관들이 해당 국가의 인권단체, 시민사회 대표와 접촉을 정례화하도록 했다.
또 국무부 당국자들이 해외로 출장 갈 경우 인권단체 등과 모임을 일정에 포함하도록 하는 한편 국무부 관리들에게도 군사원조, 비자 금지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폴리티코는 이 전문이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을 구체적인 목표로 변화시키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시도라면서 대체로 인권 문제 비판을 피해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전략적으로 결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링컨 장관은 최근 인종, 소수민족에 관한 유엔 특별 조사관을 미국에 초청했다고 발표하면서 인권을 다루는 유엔의 모든 조사관을 공식 초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엔 조사관들이 미국의 인권 학대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조사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풀이했다.
그러나 폴리티코는 블링컨 장관이 미국의 결함을 인정해도 좋다고 언급한 부분이 공화당의 반발을 촉발할 수 있다고 봤다.
일례로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 의원은 블링컨 장관의 유엔 조사관 초청 발표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인을 때리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며 "정신 차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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