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금융권 탐욕 과도…소비자 부담 완화 방안 찾아야"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가계 부채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는 가운데 국내 대표 금융그룹들이 사상 최대 이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가계,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빚더미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황에서 전대미문의 은행권 이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은행이 적정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상대로 과도한 이자놀이로 탐욕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 4대 금융그룹 전대미문의 이익 행진
국내 4대 금융그룹의 상반기 순익이 약 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이들 금융그룹의 작년 전체 당기순익(약 10조6천억원)의 75%에 달한다. 국내 금융 역사에서 은행그룹들이 이처럼 엄청난 이익을 낸 적은 없었다.
금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B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2조4천743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4.6%(7천630억원) 증가했다.
하나금융지주[086790]의 순익은 1조7천532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30.2%(4천71억원) 증가했고, 우리금융지주[316140]의 순익은 1조4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4.9% 증가했다.
아직 실적이 발표되지 않았으나 1분기에 1조1천118조원의 순익을 올렸던 신한금융지주는 2분기에도 호조를 보여 상반기 순익은 2조3천억원 안팎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금융그룹은 주력인 은행 영업이 호조를 보인데다 증권, 보험, 캐피털 등 비은행 부분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면서 순익이 많이 증가했다.
은행 부문의 경우 KB국민은행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4천2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1% 늘었고, 우리은행도 작년 동기 대비 88.7% 늘어난 1조2천793억원의 순익을 거뒀다.
각 금융그룹의 이익이 대폭 증가한 데는 확실한 예대마진을 업은 이자 수익이 중추 역할을 했다. KB금융[105560]의 상반기 순이자 이익은 5조4천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3% 늘었다.
하나금융은 핵심 이익 4조5천153억원 가운데 72%인 3조2천540억원이 이자 이익이었다. 우리금융 역시 이자 이익이 3조3천226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3% 증가했다.
은행들은 앞으로도 실적 호조가 지속할 전망이다. 대출에 대한 담보 비율이 90% 안팎이어서 부실 우려가 적은데다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를 올릴 경우 막대한 이자 이익 증가가 예상된다.
이미 은행들은 다투어 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지난 1년 새 1%포인트 가까이 뛰었다.
작년 10월 이후 정부가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은행들은 우대금리도 0.5%포인트 이상 크게 깎았다.
◇ 국민은 빚더미서 허우적
국민은 빚더미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천666조원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말의 1천504조6천억원보다 10.72%(161조4천억원) 늘었다.
주택 매매, 전세 거래 관련 대출에 코로나로 인한 생활자금 수요, 주식.코인 투자 수요 등이 몰리면서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 3월 말 831조8천억원으로 2019년 말에 비해 18.8%(131조8천억원) 불어났다.
중소기업은 대출은 3월 말 현재 655조원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말의 545조4천억원에 비해 20%(109조6천억원)나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여서 가계나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금리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은행들은 예금 금리는 찔끔 올리고 대출금리는 큰 폭으로 올리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긴다.
우리은행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경우 약 1천750억원의 이자수익 증가 효과를 예상했다. 자산 규모가 큰 KB금융이나 신한지주[055550], 하나금융의 이익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한은 추산에 의하면 가계대출의 경우 변동금리 대출이 72% 정도임을 고려할 때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11조8천억원,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5조2천억원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중 금리가 따라 오르면서 소득이 변변치 않거나 매출이 부진한 가계나 자영업자, 중소기업은 한계 상황에 몰릴 수 있다.
◇ "금융권 탐욕 과도…소비자 부담 완화 방안 찾아야"
가계는 물론 일부 수출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들을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내는 금융권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물론 은행들은 자선 기관이 아니다. 고용을 유지하고, 이익을 내면 법인세를 내는 방식으로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 코로나 국면에서도 금융권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금 204조4천억원에 대해 만기 연장이나 이자 상환을 유예하고 있다.
하지만 면허를 받아 영업하는 사실상의 독점 구조 속에서 별 어려움 없이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거대 금융그룹들이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영업 기반인 민생의 고통을 덜기 위해 사회적 책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 위기로 모든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제조업도 아닌 자금 중개 기관인 금융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냈다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지금 우리 경제 전반이 수출을 빼고는 다 어렵다"면서 "가계와 기업 등 힘겨운 금융 소비자들을 상대로 이자와 수수료 등 금융중개로 엄청난 이익을 냈다는 것에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이 자발적으로 상생과 고통 분담 차원에서 탐욕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안진걸 소장은 "예대마진이라는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으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 만큼 금융권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저소득자 등 어려운 계층의 이자 부담을 줄여줘야 하며 이게 어렵다면 당국이 위기 국면에서의 금리인하 요구권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석진 교수는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지만 금융권의 비이성적 행태를 방치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라면서 "금융기관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국이 나서 대출금리나 거래 수수료 등을 인하하고, 어려운 계층에 대해서는 이자 유예나 감면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im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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