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김동규 기자 =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1년간 전월세 시장은 적잖은 혼선을 겪었고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찌 보면 제도 자체는 단순하지만 실생활에서 적용될 때는 다양한 변수와 얽히면서 여러 논란을 초래했다.
무엇보다 누군가 잘못해도 이를 행정적으로 제재하지 못해 결국 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쟁에 빠진 당사자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등록임대 제도를 두고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돼 임대시장의 불안은 이어지고 있다.
◇ "제도 준비부터 시행까지 너무 빨랐다"
임대차법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정부와 여당 간 공감대가 마련된 사안이었기에 제도 도입 자체는 충분히 예견됐었다.
하지만 문제는 작년 여당이 압승한 총선 이후 제도 추진이 너무 갑작스럽게 급물살을 탔다는 점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법안 처리와 시행까지 모든 절차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됐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가 함께 제도 시행을 준비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제도가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해야 할 국토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초기엔 국토부에 전담 조직도 없었다. 올해 4월에야 주택임대차지원팀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임대차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는 작년 7월 31일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공포된 직후 바로 시행됐지만 전월세신고제는 올해 6월 뒤늦게 시작됐다.
이를 두고 전월세신고제를 통해 임대차 시장의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나머지 두 법을 시행해야 했지만 너무 제도를 도입하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관료 출신 한 인사는 "당시 당정이 임대차 3법을 너무 서둘렀다"며 "좀더 준비된 이후에 제도를 시행해야 했을 텐데 너무 급하게 추진돼 혼선이 커졌다"며 아쉬워했다.
정부는 지자체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부동산원 등에 콜센터 등 상담 조직을 설치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초기에는 상담 인력조차 제도를 숙지하지 못해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어수선한 임대차 시장
전월세상한제는 계약갱신 때 5% 이내로 임대료 증액폭을 제한하는 것이고 계약갱신청구권제는 기존 2년 계약에 세입자가 원하면 계약을 2년 더 연장하는 내용으로 제도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적용될 때는 여러 변수와 복잡하게 얽히면서 논쟁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일례로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히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는데, 실거주 의사를 내비쳤던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가 다른 전셋집을 계약한 뒤 상황이 바뀌었다며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경우가 여전하다.
그러면서 집주인이 자신은 실거주를 확언한 게 아니고 가능성을 언급한 거라면서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이 거짓으로 실거주 핑계를 대고 자신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부했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주민센터 창구에서 전 세입자의 정보 열람 요청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정부는 최근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제도를 다시 안내하기도 했다.
전세를 낀 집의 매수자가 기존 세입자의 퇴거 문제 때문에 입주를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세 낀 집의 매매 계약이 이뤄질 때 매수자가 실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고 이사하겠다고 하면 매수자가 입주할 수 있다.
하지만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기로 했는지를 두고 세입자와 매수자, 공인중개사 간에 말이 달라지는 등 혼선이 발생해 계약이 어긋나는 경우가 속출했다.
분쟁을 막기 위해 주택 매매 시 중개사가 매도인으로부터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확인하는 서류를 받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등 정부가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일정 기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무엇보다 새로운 임대차법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됐다고 해도 정부가 나서서 구제해주진 못한다는 점에서 분쟁을 겪은 이들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전월세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제는 민법 계열 법이어서 당사자 간 갈등이 생겨도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 소송밖에 없기 때문이다.
40대 주부 김현진(가명)씨는 작년 말 서울 강남구에서 세입자가 낀 집을 샀다가 제때 입주를 하지 못 할 뻔한 상황에 처해 고역을 겪어야 했다.
김씨는 "세입자가 분명히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겠다고 해서 계약을 했는데 갑자기 말을 바꿔 입주를 못 할 뻔했다"며 "결국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당시 정부의 Q&A에 나온 내용 등을 제시해도 세입자나 공인중개사, 매도인 모두 자신들의 말만 반복해 피가 마르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임대차 계약 관련 분쟁과 상담은 크게 늘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임대차 계약 종료·갱신 관련 분쟁 건수는 법 시행 전 월평균 2건(2020년 1∼7월)에서 법 시행 후 22건(2020년 8월∼2021년 6월)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공단에 접수된 임대차 기간 관련 상담 건수도 작년 1∼7월 296∼537건에서 작년 8월∼올해 6월은 874∼1천598건으로 크게 늘었다.
공단 관계자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해 갱신을 거절하는 사례에 대한 상담이 크게 늘어났다. 법 시행 1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혼선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등록임대는 어디로 가나
최근에는 주택 임대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등록임대에 대한 제도 변경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당정은 2017년에만 해도 등록임대를 활성화하겠다면서 각종 세제·대출 특혜를 줬지만 이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임대사업자들을 집값 과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는 정책을 번복하는 행보를 보였다.
여당은 올해 4·7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아예 등록임대 중 건설임대만 유지하고 매입임대는 폐지하는 방안까지 꺼내 들었다.
지금은 반대 여론에 밀려 재검토에 들어갔지만, 이같은 난맥상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도에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정부가 등록임대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의무 위반에 대한 강도 높은 점검에 나선 데 대해 임대 사업자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다.
임대사업자들은 정부가 그동안 별다른 관리나 안내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오래전 계약까지 들여다보며 의무 위반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임대사업자는 "그동안 임대료를 올리지도 않고 묵시적 계약 연장으로 임대주택을 유지해 왔는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과태료 대상이 됐다"며 "구청에선 오히려 지금 뒤늦게 신고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으니 올 연말이든 정부가 다시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하기를 기다려보라고 조언할 정도"라고 말했다.
다음달 18일부터는 임대사업자가 기존 계약을 연장할 때 보증금 반환 보증 가입이 의무화된다.
국토부는 최근 임대사업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보증 가입 의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문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부채비율이 높은 임대사업자에 대해선 보증 가입을 거부하고 있어 일부 임대사업자는 가입하려 해도 못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국회에선 이 보증 가입 의무를 위반했을 때 지자체가 직권으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말소할 수 있게 하고, 주택 한 채당 3천만원 한도 내에서 보증금의 10%를 과태료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민간임대특별법 개정안도 논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지난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국민의힘 의원들의 강한 반대로 보류됐다.
일부 임대사업자들이 법사위 소속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내 법안 반대 민원을 제기한 것이 주효했다.
국토부는 8월 18일부터 바로 보증 가입 의무 위반 사업자에 대한 제재에 나서지는 않을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사업자들이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도록 계도 기간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이에 대해 국회에서 "HUG 내부 규정 등을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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