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측, 싱가포르 요구에 '안 때리면' 조건 내걸어…태형 6대 '모면'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범죄자들을 매로 다스리는 태형(笞刑)을 유지하고 있는 싱가포르가 은행 강도 후 해외로 도주한 캐나다 남성에 대해 이 형벌을 면제했다.
27일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와 CNA 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싱가포르 내무부는 캐나다 국적의 은행 강도 데이비드 로치(31)에 대한 태형이 면제됐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싱가포르 정부가 로치의 범인 인도를 요청하면서 영국 정부에 어떠한 신체적인 형벌도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것이라고 내무부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할리마 야콥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된 권한을 행사, 로치에게 선고된 태형 6대를 면제했다고 설명했다.
로치는 지난 2016년 7월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지점에서 직원을 협박, 3만 싱가포르달러(약 2천500만 원)를 빼앗아 달아났다.
그는 범행 직후 태국으로 도망쳤다가 현지 경찰에 체포돼 14개월 복역했다.
태국 당국은 로치를 송환하라는 싱가포르 정부 요청을 거절하고 그를 본국인 캐나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비행기에 태워 출국시켰다.
그러나 로치는 경유지인 히스로 공항에서 싱가포르 당국의 요청을 받은 영국 경찰에 다시 구금됐고 싱가포르는 영국 정부에 그의 송환을 요청했다.
영국 정부는 상대국 정부의 (신체적 형벌 면제) 약속이 없는 경우 범죄자를 송환하지 못하도록 법률이 규정하고 있다며, 그가 싱가포르에서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태형 처벌은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싱가포르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3월 싱가포르로 송환된 로치는 이달 7일 법원에서 혐의를 인정, 징역 5년에 태형 6대를 선고받았다.
싱가포르 내무부는 이번 조치가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게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면서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에서 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의 법적 틀 안에서 필요하고 허용되는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이 예외적 조치였을 뿐, 다른 사건에서 태형을 면제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처음으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태형 처벌은 1871년 정식으로 형사소송법령으로 제도화됐다.
18세 이상 50세 미만의 남성 범죄자 중 매질을 견딜 수 있는 건강한 경우에만 태형 처벌 대상이 되며, 여성과 50세 이상 남성 또는 사형수는 태형 면제 대상이다.
최대 태형 처벌은 24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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