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수용기 조합의 활성화 패턴에 따라 냄새 감지 달라져
미국 록펠러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인간의 후각 기관은 시각, 미각 등 다른 감각 기관보다 훨씬 더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눈은 단 3개의 수용기(receptor)로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을 모두 구분한다.
이것과 비교해 후각이 관장하는 '화학의 세계(chemical world)'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수백만 가지의 서로 다른 냄새가 존재하는 데다 각각의 냄새도 형태, 크기, 특성 등이 천차만별인 수백 종의 분자로 구성된다.
예컨대 구수한 커피 향만 해도 200가지 이상의 화학적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매우 다양한 이들 요소 가운데 실제로 커피 향과 비슷한 냄새를 내는 건 하나도 없다.
인간의 후각 기관은 수백 종에 불과한 냄새 수용기(odor receptors)를 갖고 엄청난 숫자의 분자를 구분하고 감지해야 한다.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과학자들은 인간의 후각 기관이 다른 감각 기관과 전혀 다른 진화 경로를 거쳤을 것으로 믿어 왔다.
미국 록펠러대 연구진이 마침내 후각 수용기가 작동하는 분자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개별 후각 수용기는 다른 기관의 수용기와 달리 많은 분자와 결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냄새를 감지하는 열쇠는 후각 수용기 조합의 활성화 패턴에 있었다. 뇌는 이 패턴을 보고 냄새를 구분했다.
버네사 루타(Vanessa Ruta) 생물화학 부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4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실렸다.
많은 과학자의 예측대로 후각 수용기는 신경계의 다른 수용기에선 거의 볼 수 없는 로직(logic)으로 작동했다.
다른 수용기는 대부분 정교한 형태를 갖춰 '자물쇠와 열쇠 방식'으로 몇몇 개의 분자하고만 결합한다.
그런데 후각 수용기는 각각 다수의 서로 다른 분자와 결합했고, 그 덕분에 많은 화학적 요소에 반응했다.
후각 수용기가 발견된 건 약 30년 전이다.
그런데도 후각 수용기의 구조적, 기계적 작동 시스템이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분자를 이미지화하는 기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냄새 수용기가 구조적, 화학적으로 다른 여러 개의 화합물에 반응하는 이유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풀려면 하나의 수용기가 여러 개의 다른 화학물질을 어떻게 인지하는지부터 밝혀내야 했다.
연구팀이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 건 주택가의 어둡고 습한 곳에서 서식하는 좀(jumping bristletail)이었다.
최근 유전체 해독이 완료된 이 곤충의 후각 수용기는 5개에 불과했다.
곤충의 후각 수용기는 다양하지만, 작동 방식은 동일했다.
후각 수용기가 만드는 이온 채널은 표적으로 하는 후각 자극제가 나타날 때만 열려 후각 세포를 활성화했다.
연구팀은 OR5라는 좀의 후각 수용기에 실험했다.
이 수용기는 테스트한 분자의 60%에 반응할 만큼 표적 범위가 넓었다.
놀랍게도 후각 자극제와 결합하면 수용기의 구조가 달라졌다.
다시 말해 수용기 혼자 있을 땐 이온 채널이 닫혔다가 유제놀(eugenol·소독액)이나 DEET(곤충 퇴치제)와 결합하면 채널이 열렸다.
기존 가설과 달리 유제놀과 DEET는 수용체의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포켓(pocket) 구조에 딱 들어맞게 결합했다.
그런데 포켓 내벽의 아미노산은 특정한 후각 자극제를 골라 강하게 결합하지 않고, 약한 화학적 결합에 머물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이 포켓은 같은 방법을 써서 다른 냄새 분자와도 결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루타 교수는 "이런 종류의 불특정한 화학적 상호작용 덕분에 서로 다른 후각 자극제를 식별해 감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후각 수용기는 특정한 화학적 특징에 선별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후각 자극제의 일반적인 화학적 성질을 감지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실험한 건 좀의 후각 수용기지만, 핵심적인 작동 원리는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