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ARF 회의서 한미연합훈련 반대·대북제재 완화 주문하며 미국 압박
미중, 남중국해·인권 등 문제 놓고도 또 충돌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이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기대한 만큼 중국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과 관계를 경쟁, 적대, 협력 등 다층적으로 규정한 뒤 대북정책은 양측이 협력 가능한 대표적 사안으로 보고 그동안 중국의 협력을 구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러나 6일 양국은 물론 한국과 북한 측 대표까지 참석한 가운데 화상으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의 태도는 미국의 기대에 상당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이달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반대, 대북제재 완화 입장을 밝히며 미국을 거들기는커녕, 오히려 압박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 부장은 합동군사훈련이 "현재의 형세 하에서 건설성을 결여한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과 대화 재개가 아닌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또 북한이 수년간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했다면서 대북 제재 완화 또는 해제 후 북한의 위반 조치가 있을 때 다시 제재를 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가역 조항'을 활성화해 대북 제재 완화를 주문했다.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다른 나라들과 함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하는 데 동참했다고만 돼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언급을 했는지는 소개되지 않았다.
왕 부장의 대북 제재 관련 발언의 경우 중국의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지만 국제회의 석상에서 대북 해법을 놓고 미국과 상당한 격차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그간 한국과 협의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연합군사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또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수 있다면서도 대화 재개에 앞서 제재 해제와 같은 '선물'을 먼저 주는 데는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이날 칼럼에서 미국이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등 최근 남북관계 해빙에 고무돼 있지만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은 없다는 미 고위 당국자의 언급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 발언만 놓고 보면 그간 북한의 뒷배라는 평가까지 받는 중국을 향해 대북제재 이행을 강화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중국은 오히려 제재 완화에 방점을 두고 되받아친 것이 된다.
또 통신선 복원 이후 한미 당국자 협의에서 대북 인도주의적 협력 모색 등 언급이 나와 한미가 인도적 지원을 고리로 대북 접점찾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지만, 중국은 더욱 전향적인 조처를 요구하며 압박한 형국으로도 보인다.
왕 부장의 발언이 대북 정책에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대미 메시지인지, 회의에 참석한 북한측 대표를 염두에 둔 북한 유화용 대북 메시지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미국 생각대로 순순히 따라가진 않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중국공산당 100주년, 허난(河南)성 홍수피해 등을 놓고 친서와 답전을 주고받으며 친선을 다지고 있다.
블링컨 장관과 왕 부장은 이번 ARF 회의에서 인권, 남중국해 문제 등을 둘러싼 충돌도 반복했다.
국무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국제 해양법상 의무를 준수하고 남중국해에서 도발적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 티베트, 홍콩, 신장에서 계속되는 인권 학대에 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부장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제멋대로 개입하거나 민주주의를 구실로 이기적인 지정학적 어젠다를 추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서도 역외 국가들의 간섭이 평화와 안정의 최대 위협이며, '항행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은 역내 국가들이 저항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모두 미국을 겨냥한 표현들로 여겨진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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