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 제대로 교전도 못하고 퇴각…미영, 자국민 대피 경보
(자카르타·서울=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김용래 기자 = 미군과 국제동맹군이 대부분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 반군 탈레반이 농촌 지역에 이어 도시 장악을 시작해 긴장이 최고 수준으로 고조되고 있다.
탈레반은 지방의 중심도시 두 곳을 불과 24시간도 안 돼 잇따라 함락시켰고, 정부군은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교전도 못 하고 퇴각하거나 투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7일(현지시간) AFP통신과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은 전날 아프간 남서부 님루즈주(州)의 주도(州都)인 자란즈를 점령했다.
이란과의 접경지역에 있는 자란즈는 전투 시작 3시간 만에 함락됐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주도를 함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사실상 아프간 수도 카불을 사방에서 봉쇄하며 파죽지세인 탈레반의 기세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외신은 보도했다.
한 지방관리는 가디언에 "님루즈 전체에서 현재 정부가 통제하는 곳은 없다. 탈레반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면서 "정부군은 다른 지방으로 달아나거나 투항했다"고 말했다.
자란즈 관리들은 정부군에 일주일 넘게 증원군을 요청했지만, 병력 증파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지 주민 3천여명이 이란이 국경을 폐쇄하기 직전 이란으로 넘어갔으며, 아프간 정부 쪽에서 일하거나 일한 전력이 있는 주민들은 탈레반 보복을 우려해 은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은 아울러 7일 자우즈얀주의 주도 셰베르간도 점령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자란즈를 함락한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주도를 점령한 것이다.
자우즈얀주의 카데르 말리아 부지사는 "정부군과 관리들이 공항 쪽으로 퇴각했다"고 AFP에 밝혔다.
탈레반은 미군과 국제동맹군이 오는 9월 11일까지 모두 철수한다고 발표한 뒤 올해 5월부터 점령지를 점차 넓혀 아프간 영토 절반 이상을 장악했으며, 국경 지역도 속속 손에 넣은 뒤 주요 도시로 진군 중이다.
탈레반과 정부군은 여러 도시에서 치열한 교전 중이며, 자란즈가 탈레반에 넘어갔다는 소식에 정부군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아프간의 안보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며 "아프간 내 모든 영국인은 지금 바로 상업적 수단을 이용해 아프간을 떠나라. 우리가 비상시기에 당신들을 탈출시킬 수 있다고 믿지 말라"고 공지했다.
이어 "아프간에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수법이 발전하고, 정교해지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납치 위협도 높다"고 경고했다.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인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아프간을 떠나라고 촉구했다.
미 대사관은 "안보 상황과 축소된 인력 규모상 대사관이 아프간에 남은 미국인을 지원하는 역량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카불 미 대사관 직원들은 지난 4월 27일 미 국무부의 지시에 따라 필수인력을 빼고 이미 아프간을 떠난 상태다.
유엔도 아프간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
데보라 라이온스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 대표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프간은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위험한 전환점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은 칸다하르, 헤라트, 헬만드주의 주도를 무력 점거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도심 봉쇄에 따른 인적 피해와 식량난, 의료품 부족 가능성이 크다"고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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