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조작의혹에 거리로 나선 시위대 강경 진압…정치범 600여명 수감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994년 정권을 잡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66)이 지난해 대선에서 6연임에 성공한지 1년이 됐다.
그동안 벨라루스는 전 세계적으로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대선 직후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쏟아졌다.
수만명의 시민이 연일 루카셴코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했다. 집권세력의 대응은 강경진압이었다.
많은 시위대가 체포됐다. 검찰은 평화시위 참여자나 야권 인사들을 극단주의자로 몰고 표적 수사도 진행했다. 검찰이 시위와 관련해 착수한 수사는 4천700건이 넘는다.
벨라루스 인권단체 비아스나는 지난달 기준 600명이 넘는 정치범들이 구금된 것으로 파악했다.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벨라루스의 대선 후 1년을 평가하면서 정부가 권위를 더 내세우며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에는 벨라루스 당국의 탄압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해오던 반체제 인사 비탈리 쉬쇼프가 키예프의 한 공원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는데, 루카셴코 정권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수사 당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위장한 타살 가능성에 주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5년 전에도 벨라루스 당국을 비판해온 언론인 파벨 셰레멧이 키예프에서 타고 가던 승용차가 폭발해 사망했다.
당시 벨라루스 정권의 공작원이 차량에 설치한 폭탄을 원거리에서 폭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벨라루스의 한 반체제 인사는 "쉬쇼프 사망 사건은 해외로 망명한 벨라루스인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적을 잇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루카셴코 정부는 옛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 벨라루스 KGB를 동원해 핵심 반정부 인사들을 구금하거나 추방해왔다.
지난 5월에는 야권 성향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가 탑승한 여객기를 벨라루스에 강제 착륙시키고 그를 가택 연금했다.
그리스 아테네를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향하던 여객기가 벨라루스 영공을 지날 때 전투기까지 동원해 강제 착륙시킨 것이다.
최근에는 도쿄 올림픽 도중 벨라루스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가 자국 육상팀을 비판했다가 강제 귀국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치마노우스카야는 안전을 우려해 폴란드로 망명했다.
지난해 대선 이후 두 차례 구금을 당한 한 심리학자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며 "사람들은 폭력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벨라루스의 선거 조작 의혹과 인권 탄압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제재를 가했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줘 서방국들의 제재가 효과적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는 옛 소련의 일원인 벨라루스에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해오며 노골적으로 루카셴코 정권을 비호해왔다.
한 서방국들의 제재가 현실적으로 벨라루스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날 폴란드 주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는 벨라루스 출신 시민들이 루카셴코 정권의 탄압 뒤에 푸틴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
벨라루스 반체제 인사들은 현재 서방의 제재가 충분치 않아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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