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촌·부촌 나누는 벽에 시민단체가 안개 속 물 수집하는 장치 설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페루 수도 리마의 한 빈민촌 팜플로나 알타와 이웃 부촌 라스 카수아리나스 사이 언덕엔 높이 3m, 길이 10㎞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페루 빈부격차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수치의 벽'으로 불리는 이 벽이 빈민촌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변신했다고 EFE통신이 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이 벽은 빈민촌 확장을 막기 위해 세워진 일종의 경계선이다.
당연히 벽을 사이에 둔 양쪽 마을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쪽엔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지만, 다른 한쪽의 판잣집들엔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페루의 시민단체 '물 없는 페루인들'(MPSA)는 빈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치의 벽을 활용하기로 했다.
나일론 그물망을 통해 공기 중 안개를 물로 바꾸는 장치인 '포그 캐처'(fog catcher)를 벽 위에 설치한 것이다.
그물망으로 공기 중 수분을 수집해 아래 물탱크 안에 저장하는 방식인데 안개가 짙은 날에는 총 23개의 포그 캐처에서 최대 9천ℓ의 물을 얻을 수 있다. 마을 40가구에게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MPSA의 아벨 크루스 대표는 EFE통신에 "가난한 이들과 부자들을 나누는 벽이 좀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며 "하늘에서 얻은 식수를 주민들에게 공짜로 나눠준다"고 말했다.
급수차에서 물을 사서 써야 했던 빈민촌 주민들은 한결 편하게 물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주민 후스티나 플로레스는 전엔 급수차가 오면 4인 가족 일주일 치 물 1천100ℓ를 30솔(약 8천400원)에 사서 쓰곤 했다. 급수차가 언덕 꼭대기 주택들에까지는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치의 벽 물탱크에 올라가 물을 길어다 쓰면 된다.
MPSA는 2010년 리마를 시작으로 식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페루 곳곳에 포그 캐처를 설치하고 있다고 EFE통신은 전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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