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생존자 63명 증언 공개…미성년자·임신부도 피해
"장기간 감금한채 돌아가며 성폭행" 증언…"전쟁·반인륜 범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에티오피아군이 내전이 벌어진 북부 티그라이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수백 명을 강간했다는 증언이 쏟아져나왔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에티오피아 정부와 티그라이 집권정당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간 내전이 시작된 이래 정부군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생존자 63명의 증언을 담은 보고서를 1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정부군뿐 아니라 정부군 편에서 내전에 개입한 에리트레아군, 경찰과 무장단체 등도 성폭행을 저질렀다.
앰네스티에 성폭행 피해 사실을 증언한 티그라이 여성 가운데 12명은 자녀 등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했다고 밝혔다.
또 5명은 성폭행을 당할 때 임신 중이었다고 했다.
앰네스티는 "성폭행이 광범위하게 가해졌으며 성폭행엔 피해자와 피해자가 속한 인종집단을 모욕하고 테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여성들이 성노예처럼 부려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피해자 12명은 군 주둔지 등에 수일에서 수 주간 감금된 채로 여러 남자들에게 반복적으로 강간당했다고 증언했다.
한 17세 소녀는 "에리트레아군에 끌려가 2주간 갇힌 채 8명에게 강간당했다"면서 "그들은 4명씩 2교대로 돌아가며 한 팀이 주변을 경계하면 다른 팀이 나를 성폭행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21세 여성은 내전 발발 직후인 작년 11월 5일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군에 끌려가 다른 여성 30명과 함께 40여일간 감금된 채 강간당했다고 진술했다.
가해자들이 여성의 성기에 손톱이나 돌멩이 등 각종 물체를 넣어 영구적으로 손상하려 했다는 증언도 피해자 2명에게서 나왔다. 가해자들이 인종적 욕설 등으로 여성들을 지속해서 모욕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내전이 시작된 이후부터 지난 6월 9일까지 티그라이 아디그랏 병원에서만 강간 피해사례 376건이 접수됐다. 올해 2~4월 티그라이 의료시설에 성폭력 1천288건이 접수됐다는 통계도 있다.
앰네스티는 이런 통계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밝혔다.
아녜스 칼라마르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강간과 성폭력이 티그라이 여성들에게 정신·신체적으로 영구적인 피해를 주는 무기로 사용됐음이 분명하다"면서 "성범죄의 규모와 가혹성은 특히 충격적이다. 전쟁범죄이며 반(反)인륜범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외교부는 앰네스티 보고서가 '잘못된 방법론'에 기초했으며 앰네스티가 에티오피아 정부를 겨냥해 '선정적인 공격과 비방전'을 펼친다고 주장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다만 티그라이에서 강간 등이 벌어졌음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에티오피아 정부에서도 이미 나온 상황이다.
필산 압둘라히 아흐메드 에티오피아 여성부 장관은 지난 2월 "티그라이에서 강간이 저질러졌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면서 조사팀을 구성해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를 결과를 수사당국에 넘겼다.
에티오피아 사법당국은 지난 5월 군 장병 3명이 강간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별도로 25명이 같은 혐의로 기소된 상태라고 발표했다.
티그라이 등 에티오피아 북부에선 작년 11월 이후 정부군과 TPLF 반군 간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내전을 시작한 쪽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아비 아머드 총리로 그는 TPLF가 연방군 기지를 공격했다면서 군사작전을 지시해 내전을 촉발했다.
지난 6월 TPLF 반군이 티그라이 주도 메켈레를 탈환하자 아머드 총리가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으나 반군이 확전 태세를 보이며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TPLF 반군도 전쟁범죄와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는 주장도 나온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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