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 1975 데자뷔…'미국의 치욕' 카불에 재연되나

입력 2021-08-15 16:09   수정 2021-08-15 16:13

사이공 1975 데자뷔…'미국의 치욕' 카불에 재연되나
탈레반, 아프간 수도 카불 무력장악 임박
남베트남 패망 직전 '굴욕적 탈출' 회자
미 야당 "사이공 속편 넘어 훨씬 나쁜 상황"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탈레반이 곧 수도 카불을 비롯한 아프간 전체를 장악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이 베트남전 패전 직전 벌인 최후 탈출작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최근 아프간 주재 대사관 직원 대피 결정이 내려지자 "카불이 함락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라면서 미국이 베트남전 막판에 펼친 탈출작전을 거론했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치욕적인 '1975년 사이공(현재 베트남 호찌민) 함락'의 속편으로 나아가게 됐고 심지어 상황이 그때보다 나쁘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남베트남 패망 직전인 1975년 4월 29일부터 이틀간 '프리퀀트 윈드 작전'(Operation Frequent Wind)을 벌인다.
북베트남군의 포격이 당시 미군이 주둔한 사이공 떤셔넛공군기지까지 닿자 비행기로 탈출을 중단하고 헬기를 왕복 운항해 북베트남에 남아있던 미국인 등 민간인을 남중국해에 있던 함정들에 실어나른 최후 탈출작전이었다.
프리퀀트 윈드는 '잦은 바람'이란 뜻이다.
프리퀀트 윈드 작전이 시작됐음을 알리고자 라디오로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반복해서 내보냈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이 작전으로 미국인 1천300여명과 베트남인 및 제3국적자 5천500여명이 사이공이 북베트남 수중에 떨어지기 직전 탈출에 성공한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헬기들이 10분 간격으로 사이공 미국대사관 등에 내려 사람들을 태워서 나갔다.

일부 조종사들은 19시간 연속으로 비행하기도 했다.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미 해병 조종사들이 682차례 출격해 1천54시간 비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이공 미국대사관 인근 호텔 옥상에 내린 헬기를 타고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다리를 오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긴박했던 상황을 전해준다.
애초 계획과 달리 남베트남 공군도 헬기에 민간인을 태우고 탈출행렬에 꼈다.
미 해군 함정들이 자신들도 착륙시켜주리라 기대하면서 무작정 나선 것으로 이들까지 모두 받아주며 함정이 붐비자 갑판에 착륙한 헬기를 바로 바다로 밀어서 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베트남인들은 작은 보트에 의지해 미 해군 함정까지 오기도 했다.
당시 프리퀀트 윈드 작전과 스스로 탈출해 미군에 구조된 베트남인은 총 13만8천여명으로 추산된다.
프리퀀트 윈드 작전으로도 약 400명이 사이공을 탈출하지 못하고 남겨졌는데 여기엔 한국대사관 직원을 포함해 한국인 100명도 있었다.
베트남전은 세계 최강국 미국이 유일하게 패배한 전쟁으로 불린다.
아프간전도 '실패한 전쟁'으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46년 전 베트남에서 벌인 굴욕적인 탈출 작전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아프간에서 미국대사관 옥상으로 사람들이 떠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일단 미국은 카불 주재 자국 대사관에 있는 주요 인력들을 36시간 안에 대피시킨다는 작전에 돌입해 이날 카불 상공에 헬기를 띄웠다.
미국 현지언론에서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는 데 며칠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국방부 관리의 관측까지 전해지고 있다.

jylee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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