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아프간발 난민 위기에 촉각…메르켈 "파키스탄 등 지원"(종합)

입력 2021-08-17 03:43   수정 2021-08-17 08:51

EU, 아프간발 난민 위기에 촉각…메르켈 "파키스탄 등 지원"(종합)
위기 재연시 결속력 시험대…오스트리아는 여전히 반난민 강경노선

(베를린·서울=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김지연 기자 = 유럽연합(EU)이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장악 이후 난민 위기가 재연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프간을 곳곳을 장악한 탈레반이 과거와 같은 억압적인 통치를 이어갈 것을 우려한 아프간인 수십만 명이 이미 피난길에 오른 가운데 수도 카불까지 탈레반 수중에 떨어지면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EU내 공동 난민 보호정책이나 난민 분산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난민 유입을 불렀던 2015년 시리아 내전과 같은 위기가 재연된다면 EU의 결속력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16일(현지시간)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 등에 따르면 이미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 이전에 수십만 명의 아프간인이 역내나 인근 국가로 피난했다.
난민행렬의 기세는 EU 국경 외부에서 지금까지 꺾이지 않은 상황이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EU 국경 밖 인근 국가에서 올해 수용된 아프간 불법 이주자는 4천 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WSJ에 따르면 북쪽으로 넓게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으로는 이미 유혈사태를 피해 국경을 넘은 아프간 난민이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파키스탄은 앞으로 더 많은 난민이 몰려올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동쪽 국경을 통해 넘어오는 아프간인들을 위한 임시수용소를 마련했지만, 아프간 상황이 안정되면 이들이 되돌아가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중동과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하는 길목에서 시리아 난민 수백만 명을 수용한 터키도 아프간 난민 유입을 걱정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이란을 통한 아프간 이민자 유입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EU내 주요 국가들은 이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오는 18일 각료회의를 열고, 아프간 난민의 피난 행렬의 전개 양상을 논의할 예정이다.
메르켈 총리는 "파키스탄을 비롯해 이웃 국가들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유엔난민기구(UNHCR)와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오는 18일에는 EU 내무장관회의와 외무장관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메르켈 총리는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고, 양국이 긴밀하게 협의해, 아프간 구조작전과 추후 대응을 조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오스트리아는 반난민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전날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도 망명 신청이 거부된 아프간인을 강제로 추방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APA통신에 "보호가 필요한 이들은 원래 출신국 인근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EU에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던 2015년과 같이 132만여 명이 난민 신청을 하는 위기가 재연된다면 EU의 결속력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당시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로부터 망명 신청자는 전년의 4배 수준이었다.
EU 27개 회원국은 아직 공동 난민 보호정책이나 난민의 공정한 분산에 대해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르가리티스 쉬나스 EU집행위 부위원장은 이탈리아 신문 라스탐파에 "아프가니스탄의 위기는 유럽이 새로운 이주 협약에 합의할 시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EU는 탈레반에 '개발자금지원 중단'과 '국제사회의 인정'을 카드로 내걸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만, 궁색해 보인다고 SZ는 꼬집었다.
엔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강제로 아프간을 장악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정부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며 "분쟁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호세프 보렐 EU 집행위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만약 다시 폭력으로 이슬람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고립될 것이며, 국제사회의 지원의 결핍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런 개발지원자금 중단이나 국제사회의 인정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SZ는 지적했다.



EU는 지난 2002년 이후 아프가니스탄 개발지원 자금으로 40억 유로(약 5조5천억 원)를 지원했다. 단일국가 지원 규모 기준 역대 최대다.
EU는 지난해 11월 2024년까지 아프가니스탄 개발을 위해 12억 유로(약 1조6천500억 원)를 추가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보렐 고위대표는 이런 지원을 명백한 조건과 연계했다. 아프가니스탄 내 평화적 통합과 여성과 소수자의 기본권 보장 등이 조건에 해당한다.
그는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교육 기회 제공 등 지난 20년간 이뤄진 의미 있는 진전이 유지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EU 내에서는 이런 진전에 대해 비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얼마나 순식간에 붕괴했는지 경악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클라우디오 그라치아노 EU 군사위원장은 폴리티코에서 "우리는 20주 만에 지난 20년의 시계가 되돌려질 것으로 우려했지만, 불행하게도 2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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