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업자 범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사태 출발점" 지적
전금법 개정 검토·전문 감독기관 설립 등 해결책 나와
(서울=연합뉴스) 김유아 기자 = 서비스를 기습 중단해 환불 대란을 일으킨 '머지포인트 사태'로 선불업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률을 서둘러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이 규정하는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선불업자)의 범위를 놓고 업계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을 여지가 있어 머지포인트 사태가 불거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무제한 20% 할인'을 내걸어 회원 100만 명을 끌어모았던 할인 결제 플랫폼 머지포인트의 운영사 머지플러스는 지난 11일 밤 "올 4분기 서비스를 정상화하겠다"며 상품 판매를 갑자기 중단해 대규모 환불 사태를 촉발했다.
발표 당시 머지플러스는 전금업에 따라 선불업자로 등록하라는 금융당국의 지시를 수용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최근까지도 금융감독원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우리는 상품권 발행업자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고 선불업자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금법에 따르면 ▲ 선불충전금 발행 잔액이 30억원을 넘고 ▲ 음식점, 편의점 등 2개 이상 업종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이를 발행하는 업체는 선불업자로 등록해 당국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잔액 요건은 이미 충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머지플러스는 지난 6월 말 금감원에 발행 잔액이 30억원을 넘어섰다고 전달했다.
금감원은 머지플러스 사업구조가 두 번째 선불업 등록 요건에도 해당한다고 봤다. 머지포인트의 선불금 '머지머니'로 숙박시설, 백화점, 음식점, 편의점 등 여러 업종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지플러스 측은 이용자가 머지머니로 직접 구매하는 것은 전자거래 중개업체 '콘사'가 발행하는 상품권이지 재화가 아니어서 "2개 이상 업종에서 사용하는 게 아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 변호사는 "법리 문제가 아니라 선불업자가 어디까지 해당하느냐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보인다"면서 "이런 사태는 처음이어서 누구의 해석이 100% 틀렸다고 단정하는 데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머지플러스가 혹여 법정까지 가면 선불업자 등록 요건을 두고 다툴 가능성도 있다. 현재 수사기관은 머지플러스의 미등록 영업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일단 사업구조는 논외로 하더라도 규제기관인 금감원이 선불업자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직접 내놨고, 이번 사태가 소비자 보호와 연결된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다는 점 등 때문에 머지플러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적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다만 금감원은 지난 16일 정은보 금감원장이 주재한 긴급회의에서 전금법에 구멍이 있는 것은 아닌지도 함께 살펴본다는 취지로 미등록 업체의 실태 파악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 앞으로 소비자 보호가 과제…주목받는 전금법 개정안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전금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는 여론도 이번 사태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전금법 개정안은 선불충전금 보호를 위해 송금액 100%, 결제액의 50%를 외부 금융기관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한다.
이용자가 맡긴 선불충전금은 예금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음에도 현행법은 이를 외부기관에 보호하는 규정을 두지 않고 있어, 최근과 같은 '머지런'(뱅크런+머지) 사태가 발생하면 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또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당국에 등록된 선불업자 67개사의 발행 잔액은 2조4천억원에 달하고, 선불업 관련 서비스는 지속해서 느는 추세여서 피해를 예방하는 법적 장치의 필요성도 커진다.
다만 이는 등록 업체에 한해 강제력을 띠는 것이어서 머지플러스와 같은 미등록 업체로 인한 피해까지 예방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에 정치권에선 "금융당국이 수사기관과 관련 범죄를 상시로 모니터링할 수사단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사각지대 여전…관련 전문기관 설립도 검토해야"
학계에선 머지포인트 사태를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 디지털금융을 감시하는 독립 기관의 설립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 체계에서는 제도권 밖 영업 행위까지 관리·감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과 결합한 각종 산업을 촉진하자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소비자를 보호할 건지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허점이 노출된 거라고 본다"면서 "지금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 수사기관에만 의존하기도, 권한이 없는 금융당국에 무작정 책임을 지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금융산업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우리도 유사한 검토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ku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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