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대출문의 급증…"당국 압박이 가수요 부를수도"

입력 2021-08-23 15:48   수정 2021-08-23 15:49

은행에 대출문의 급증…"당국 압박이 가수요 부를수도"
"대출 증가, 부동산 정책 등 결과인데 은행에만 '줄여라' 윽박"
농협 외 주요 시중은행들 "아직 대출 여력 있다"

(서울=연합뉴스) 은행팀 = 금융당국의 강력한 '가계대출 조이기' 압박에 NH농협은행 등이 아예 일부 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하자 금융소비자들의 불안과 혼란이 커지고 있다.
주요 은행 창구에는 대출 가능 여부를 문의하거나 실제 대출을 상담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당장 대출할 필요가 없는데도 대출을 미리 받아 두려는 '가(假)수요'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은행이나 대출자를 죄인 취급하면서 윽박지르는 식의 금융당국 가계대출 규제가 오히려 가계대출을 부추긴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창구에 1분새 10명 몰리기도…"10·11월 전세·입주 예정인데 대출 어쩌나"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주 주말을 앞두고 일부 은행의 대출 중단과 제한 소식이 알려진 뒤 주요 시중은행 창구에는 직접 방문 또는 전화를 통해 대출 관련 내용을 상담하고 문의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앞서 19일 NH농협은행은 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11월 말까지 신규 가계 담보대출 신청을 받지 않는다고 선언했고 20일 우리은행은 전세자금대출, SC제일은행은 일부 담보대출 변동금리 상품의 취급을 중지했다.
NH농협은행이 아닌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종로 지점에는 지난주 금요일 오후부터 오늘(23일) 점심시간까지 한때 1분 사이 10명의 상담 고객이 창구에 몰리기도 했다"며 "대부분 주변 직장인들로, 10월과 11월 전세나 신규 입주 예정인 주택담보대출 상담 고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공무원이 많은 지역의 지점에는 연봉 수준으로 신용대출을 제한한다는 얘기를 듣고 공무원들이 일단 최대 한도까지 신용대출을 해달라는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도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지점에는 대출이 막힌다고 하니 미리 대출 한도와 대출 가능 여부 등을 상담받으려는 신혼부부, 사업자 등이 오늘(23일) 오전 내내 몰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처럼 대출 중단에 나설 예정인지, 농협은행 대출을 대환(갈아타기)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방문과 유선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 "대출 증가, 부동산 정책 때문인데도 은행만 윽박…실수요자 불만"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다른 은행들도 NH농협은행이나 우리은행처럼 조만간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창구를 닫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일단 KB국민·신한·하나은행의 경우 NH농협은행이나 우리은행와 같은 대출 중단·제한 조치를 내놓을 분위기는 아니다.
지난 19일 기준으로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 말보다 각 2.9%, 2.1%, 4.2%, 2.9%, 7.3% 늘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이미 금융당국이 권장한 증가율 5∼6%를 넘어 불가피하게 '담보대출 전면 중단'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사용했지만, 나머지 은행들은 아직 총량 관리에 비교적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NH농협은행·농협중앙회의 주택담보대출 등 취급 중단과 같은 조처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밝혔다.
대출과 관련한 금융권의 혼란과 금융 소비자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이지만, 애초에 무조건 대출을 줄이라며 금융권을 압박한 주체가 당국인만큼 '대출 대란' 조짐의 가장 큰 책임도 당국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취임하기도 전에 최근 "기존 발표된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대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금융당국 실무진도 이달 들어 여러 차례 면담이나 유선을 통해 은행권과 제2금융권 대출 책임자들에게 더 강한 가계 대출 총량 관리를 주문해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례적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전월세 대출 금액 증가, 공매도 제한에 따른 빚투 열풍 등 정부의 부동산·금융 정책의 영향이 큰데도 금융당국이 강력한 가계대출 관리만 요구하고 있다"며 "일부 은행들이 이런 요구에 따라 대출을 중단하면서 대출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대출 가수요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가계대출 증가는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실수요 대출, 부동산 가격 상승, 주식시장 과열 등 다양한 원인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라며 "신용등급별 가계대출 한도 재산정 등 정교하고 치밀한 대응 없이 은행권에 '알아서 맞추라'며 윽박만 질러서는 '풍선효과'에 따른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1년 전과 비교해 대출 규제와 제도가 너무 많이 바뀌었고, 갑작스런 대출 중단 조치도 너무 잦아 '대출 계약' 자체의 안정성과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shk99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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