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영끌' '빚투'로 상징되는 유동성 파티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면서 경제의 불투명성이 높은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가계부채 급증과 자산시장 버블, 특히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한 고육책이다.
한은은 추가 금리 인상도 예고했다. 금리가 오르면 여기저기서 비명과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고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된다.
유동성 회수는 고통을 수반한다. 금융위원회의 대출 완급 조절과 기획재정부의 사회안전망이 조화롭게 작동해야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 가계부채·집값과 전쟁 선포한 한은
26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한 한은은 물가 상승압력과 금융 불균형 위험 누적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는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간 한은의 관리목표(2%)보다 훨씬 높은 2.5% 안팎에서 움직였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2.1%로 내다봤다.
따라서 이번 금리 인상은 금융 불균형을 완화하자는데 방점이 찍혔다. 금융 불균형은 실물 경제와 괴리된 자산시장, 특히 집값 거품이며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가계부채 폭증에 따른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누적된 금융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금리 인상의) 첫발을 뗀 것"이라고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과도한 신용 증가는 버블의 생성과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금융의 건전성 및 자금중개기능 악화를 초래해 실물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가계부채발 거시경제 위험을 해소하는 게 현시점에서 시급하다"고 했다. 가계부채와 집값 버블을 바라보는 한은과 정부의 시각이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은에 따르면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6월 말 현재 1천705조3천억원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말보다 13.3%(200조4천억원)나 불어났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6월 말 현재 948조원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12.9%(106조원 ) 증가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국 집값은 작년에 8.35% 오른 데 이어 올해는 7월까지 14.26%나 치솟아 지난 2002년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7월 11억5천700만원으로 2019년 12월의 8억5천900만원보다 34.7%(2억9천800만원)나 올라 서민 무주택자로서는 월급을 모아 아파트를 장만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 금리 인상 몇 차례 더 계속될까
한은이 통화정책의 기조를 바꾸면서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금리를 올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통위는 26일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추가 인상을 기정사실화 한 뒤 "추가 조정 시기는 코로나19의 전개 상황 및 성장·물가 흐름의 변화, 금융 불균형 누적 위험,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주열 총재는 이와 관련 "늘 그렇듯 서두르지도 지체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한은은 기준금리 1.0% 정도까지는 여전히 '완화적'이라는 시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 차례의 금리 인상으로 금융 불균형이 바로 안정화하긴 어렵다"면서 "경제 상황을 주시하면서 추가로 금리를 올릴 여지를 열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번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것은 활활 타오르는 화재 현장에 물 한 동이 뿌린 격이어서 앞으로 금리를 올리겠다는 시그널과 심리효과가 중요하다"면서 "통화정책 기조를 바꾼 만큼 금리 인상이 추가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연내 추가 인상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채권담당 애널리스트는 "10월이나 11월에 한은이 0.25%포인트 올려 기준금리를 1.0%로 가져간 뒤 미국 연준(Fed)의 통화정책을 봐 가며 내년 하반기 이후 추가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박태근 삼성증권[016360] 채권분석팀장은 "일단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연내 한차례 0.25%포인트 추가 인상할 것으로 본다"면서 "이후의 인상은 경제 상황이나 미 연준의 움직임 등을 주시하면서 내년 새 정부 출범 뒤에나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시험에 든 중앙은행의 뒷심
하지만 1.0% 수준의 기준금리로 속도가 붙은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버블 리스크를 차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주열 총재도 "집값은 정부의 주택정책, 수급 상황, 경제주체들의 자산 가격을 향한 기대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면서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통화정책 접근도 필요하지만 여러 가지 정부 정책이 같이 효과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시중에 풀린 유동성의 총량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금융 감독당국의 미시적인 대출 억제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금리 인상 환경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견조한 경기회복을 확신할 수 없는 데다 중소기업, 자영업자, 저소득 서민 등 취약계층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 "가계대출 증가 완화 등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이해하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경기 회복세가 약화하고 있는 점,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고통이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추가 금리 이상은 최대한 신중을 기대달라"고 주문했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전체 가계대출 이자는 11조8천억원,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5조2천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가계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대출 연체율은 최대 5조4천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분위기를 뚫고 한은이 뚝심 있게 긴축 기조를 밀고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동현 교수는 "경기 회복이나 취약계층의 고통 등 많은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한은이 긴축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지금부터는 굉장히 강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약간이라도 후퇴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가계부채나 집값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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