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7호부터 우주비행사 사용…볼펜 개선 방안 찾다 개발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우주펜'(spacepen)이 올해 우주기술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우주기술 명예의 전당은 미국의 비영리 '우주재단'이 우주탐사를 위해 개발된 기술 중 인류 생활에 도움이 된 혁신 기술을 선정해 올리는데, 지금까지 80여개 기술이 선정돼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우주펜은 1968년 10월 미국의 첫 유인우주선인 '아폴로 7호'에서 발터 시라 선장이 무중력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펜을 입에 물었다가 부는 TV 생중계 장면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경쟁 상대였던 러시아 우주비행사는 연필을 잘만 사용하는데, NASA는 별로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 우주펜 개발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했다는 근거 없는 비난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연필은 심이 쉽게 부러져 무중력 상태에서 떠돌다 우주비행사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주선의 전자장치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또 순수 산소만 있는 선실 내에서는 흑연으로 된 연필 심은 가연성이 높아 이를 대체할 펜이 필요했다.
이때만 해도 볼펜은 잉크가 새거나 끊기고 아예 말라버리는 등 아주 조악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우주펜을 개발한 네바다주 볼더시티의 중소기업 '피셔 펜 컴퍼니'도 이런 볼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NASA와 연결돼 전기를 마련했다.
폴 피셔 사장은 당시 보충해 쓸 수 있는 범용 잉크카트리지를 개발한 데 이어 밀폐된 카트리지 윗부분에 질소를 넣고 작은 피스톤으로 잉크를 밀어내는 가압 기술을 개발 중이었는데, 무중력 상태에서 쓸 수 있는 펜을 찾던 NASA의 요구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펜은 잉크가 새는 것이 단점이었는데, 피셔 사장은 잉크에 수지(樹脂)를 첨가해 잉크가 펜 끝의 볼과의 마찰이 일어날 때까지 거의 고체상태로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피셔 측은 이 펜의 시제품을 존슨우주센터의 전신인 '유인우주센터'에 보냈으며, 극단적 고온과 저온, 순수 산소와 진공 상태 등 다양한 환경에서 시험한 결과 문제없이 제대로 써지는 것을 확인했다. 잉크 용량도 요구 조건인 500m를 훨씬 넘어 5㎞ 가까이 선을 그으며 합격점을 받아 아폴로 7호 납품으로 이어졌다.
<YNAPHOTO path='AKR20210830064200009_04_i.jpg' id='AKR20210830064200009_0401' title='1세대 우주펜 AG7' caption='[Fisher Pen Company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피셔 사장은 이 펜이 우주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된 뒤 '우주펜'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지금까지 80개 모델을 개발해 우주비행사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케리 피셔 사장은 우주펜이 선물용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군인이나 경찰, 야외활동을 자주 하는 사람 등으로부터 수요가 있다면서 이들은 우주비행사와 마찬가지로 어떤 조건에서도 잘 써진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셔 펜 컴퍼니는 현재 약 60명의 근로자를 두고 연간 100만개의 펜을 생산해 52개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NASA는 우주펜이 신뢰할만한 성능으로 유명해진 것이지만 미국의 독창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NASA는 우주비행사를 달에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데 전념하고 펜 문제는 중소기업이 나서서 해결한 성공 사례라고 자평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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