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印·英서 '뿔뿔이 난민'…한국행 실패한 아프간협력가족

입력 2021-08-31 10:52   수정 2021-08-31 18:10

그리스·印·英서 '뿔뿔이 난민'…한국행 실패한 아프간협력가족
'아프간 내서 출국' 방침 못 맞춰…"지금이라도 한국 입국 허가해 주길"
탈레반에 막혀 한국행 비행기 못 타는 등 아프간에 남은 이들도 있어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과거 한국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국민 390명이 최근 극적으로 한국에 도착한 가운데 자격이 있음에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고 세계 각지에서 난민 생활을 하는 아프간 가족이 있다.
2009∼2015년 아프간 바그람한국병원에서 통역 등으로 근무한 모사위 사예드 시르 아그하(40)는 31일 연합뉴스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인터뷰에서 그의 가족은 현재 그리스, 인도, 영국에서 뿔뿔이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그하는 그리스에 체류하며 비영리기구에서 일하고 있고 아내와 2남3녀는 인도에, 남은 아들은 영국에 각각 떨어져 살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 정부의 아프간 협력자 이송 추진 계획을 접하고 각고의 노력을 벌였으나 끝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아그하는 "한국 정부의 이번 계획이 아프간 내에서 출발할 수 있는 협력자만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그하의 가족은 한국행 비행기에 타기 위해 막판까지 아프간 재입국을 시도했지만 탈레반의 카불 장악 후 현지 민간기 운항마저 중단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그하는 2015년 한국병원과 관련 인력이 아프간을 떠나게 되자 현지 탈출을 결심했다.
그는 탈레반이 평소 '학살 표적'으로 여기는 하자라족 출신이라 '인종 청소'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아그하는 2016년 맏아들과 함께 아프간을 탈출했다. 이란, 터키를 거쳐 그리스까지 가는 멀고 험한 여정이라 어린 자녀와 아내는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그하는 "그리스에 도착한 후 아내 등 가족을 불러올 계획이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며 "나라를 떠나고 나니 내 경력과 신분은 모두 무시되고 그냥 난민으로 불리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아그하는 결국 이후 아내와 남은 가족을 인도 뉴델리로 피신시켰다. 함께 있던 아들은 영국으로 밀입국한 상태다.

아그하는 그리스에서 난민 지위를 얻고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가족이 한곳에 모여 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는 "그리스는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내 가족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며 "현지 법상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는 내게 추가로 난민 자격을 부여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인도는 난민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라 국제법상으로는 난민 보호에 대한 의무가 없는 상태라 가족이 인도에 모여 살 수도 없는 실정이다.
가족이 재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한국행이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리고 있다는 아그하는 "한국 정부는 우리가 아프간으로 다시 들어오면 탈출시켜주겠다며 여행증명서도 발급해줬지만, 시간이 촉박했고 여건도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우리의 입국을 허락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나는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지원하고자 비전투부대를 파병했으며, 2007년 12월 군부대 철수 이후에도 지방재건팀(PRT)을 운영하며 국제사회의 재건 노력에 동참했다.
당시 한국이 운영한 병원과 직업훈련원 등에서 일했던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의 정권 장악이 임박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껴 정부에 한국행 지원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공군기 3대를 파견해 이들을 이송했다.
하지만 직업훈련원 직원 일부, 초창기 의료진과 함께 일했던 아프간인 등은 이번 이송 작업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람한국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수나툴라는 이송 대상이었지만 탈출에 실패했다.
카불 북부 바그람에 사는 그는 동네에서 탈레반이 막아서는 바람에 카불 국제공항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탈레반이 내 가족을 위협하며 우리의 출국을 막았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나툴라는 최근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괴한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
coo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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