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로 향하는 잠재성장률…"비커 속의 개구리 될 판"

입력 2021-09-08 05:30  

1%대로 향하는 잠재성장률…"비커 속의 개구리 될 판"
대선주자들, 성장 중시한다지만 근본적 해법은 '글쎄요'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최악의 저출산 고령화, 갈수록 벌어지는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한 복지·분배의 '실탄'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방법은 두 가지다. 세금을 많이 걷든 아니면 국채를 찍어 나랏빚을 늘려야 한다. 둘 다 적정 성장과 일자리 유지·확대로 경제의 체력을 키워야 가능하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이를 위해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각종 복지 공약은 쏟아내면서 성장을 위한 공약은 너무 허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2%로 추락한 잠재성장률…국가 미래가 흔들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렸던 지난달 26일 "코로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잠재성장률을 다시 추정해봤다"며 "그 결과 올해와 내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 수준까지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2~3년 전에는 재작년, 작년(2019, 2020년) 잠재성장률을 2.5% 수준으로 봤는데, 상당폭 낮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 인구 감소, 코로나로 인한 고용 충격, 서비스업 생산력 저하 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한나라의 노동력, 자본 등 생산 요소를 모두 투입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경제성장률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잠재성장률은 10년 전인 2011∼2015년엔 3.4∼3.0%, 2016∼2020년엔 2.9∼2.8% 그리고 작년과 재작년엔 2.6∼2.5%로 완만하게 하락했으나 올해엔 급격하게 추락했다.
이러다가 잠재성장률이 1%대, 0%대로 하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지난 2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2020년대, 2030년대 잠재성장률을 각 2% 초반, 1%대로 추정했다. 경제를 추동하는 에너지인 기초 체력이 부실해지면 성장도 일자리 창출도 말짱 헛일이다.

◇ '성장 중시' 한목소리…해법은 제각각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 등 복지 기본 시리즈에 앞서 지난 7월 18일 제1 공약으로 '전환적 공정 성장'을 제시했다. 기회를 늘리고 희망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상향'으로 성장의 틀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에너지·디지털의 전환기, 팬데믹 시대를 맞아 바이오 등 신성장 동력에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한편 미래 첨단산업 영역은 사전규제가 아닌 사후규제, 즉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기후에너지부, 대통령 직속 우주산업전략본부, 데이터 전담 부서를 설치하는 등 미래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7일 '넥스트(Next) 대한민국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한민국 경제 부흥을 위해 5년간 총 2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낙연 표 '뉴딜'인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40조원을 비롯, 중산층 70% 달성 및 일자리 확대를 위한 신산업 육성 124조원, 신산업 인재 육성 투자 2조원, 지역산업 육성 및 인프라 구축 83조원 등이다.
일자리 확대를 위해 육성하려는 신산업으로는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드론 등을 꼽았으며 여기에 총 3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아직 구체적인 성장 전략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복지도 필요하고, 지속가능한 복지 재정을 위해선 성장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윤 전 총장은 지난 7월 8일 청년 창업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 경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역동성"이라며 "경제의 역동성을 주기 위해서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한국에 있는 큰 글로벌 기업들도 과거에는 다 스타트업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스타트업이 커가는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빠르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홍준표 의원 역시 아직 정리된 경제 성장 공약은 없다. 하지만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지난 6월 29일 국민보고대회에서 내놓은 설문 결과를 보면 홍 의원이 어떤 성장 공약을 구상하고 있는지가 엿보인다.
설문 응답자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경제 성장(21.1%), 정치개혁(20.4%), 저출산·고령화 해결(17.9%)을 꼽았고, 경제 문제에서는 일자리 창출(29.1%), 집값·부동산 문제(26.2%), 4차산업 육성 등 미래 먹거리 준비(14.8%)가 최우선 현안으로 지목됐다.
홍 의원은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미래를 위한 번영, 기회를 위한 공정, 모두를 위한 안전, 희망을 위한 행복"을 4대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 "성장 인프라 새 판 짜지 않으면 비커 속의 개구리 신세로 전락"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고, 경제가 성숙하면서 자본투입을 통해 성장을 높이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만큼 성장력을 끌어올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기도 어렵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잠재성장률은 점차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하락세는 너무 가파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작년 초 우리나라의 최근 2년간 성장잠재력 하락 폭이 전체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IMF는 미국의 50% 수준인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을 확보할 것을 권고했다. 노동시장 개혁 등 구조혁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국내 전문가들도 다르지 않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잠재성장률을 올릴 수 있는 요인 가운데 자본과 노동 투입은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총요소생산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 측면에서는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기술혁신을 이루고, 제도적 측면에서는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야 하며, 사회적 신뢰나 법질서 준수 등의 사회자본을 선진화해 경제가 최대한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역동성을 높여 창업과 투자를 끌어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혁신이 수반돼야 한다"면서 "정부가 재정 투입으로 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산업 인프라 구축엔 적극적으로 나서되 기업활동과 투자의 효율성에 걸림돌이 되는 관료주의적 간섭은 억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 2%라는 것은 곧 1%로 내려앉는다는 얘기 아니냐"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3만달러를 간신히 넘은 국민소득이 4만달러 위로 올라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2% 후반의 잠재성장률은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대선주자들이 퍼주기 공약에 급급할 게 아니라 경제 성장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구체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면서 "경제 전반에 관료주의와 규제 만능주의가 횡행하면서 성장 인프라 자체가 약화하는 상황이어서 규제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인구문제 등 성장과 관련된 인프라의 새판을 짜지 않을 경우 비커 속의 개구리처럼 조금씩 경제가 죽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kimj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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