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치권에서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대표적인 빅테크인 카카오와 네이버의 주가가 급락했다. 8일 증시에서 카카오 주가는 10.06%, 네이버는 7.87%가 각각 하락했고 9일 오전에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시가총액 5위 이내의 대형 종목 주가가 하루 10% 넘는 낙폭을 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8일 하루에만 두 종목의 시가총액이 13조원 가까이 줄어들 정도로 증시에 미친 영향은 충격적이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정치권과 관가의 노골적인 견제 움직임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7일 토론회에서 "카카오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 시장 독점 후 가격 인상과 같은 시장 지배의 문제가 숨어있다"고 했고 윤호중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 "민주당은 이러한 상황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해 규제 입법에 나설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도 8일 국회에서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사전 규제, 금지행위를 통한 사후 규제 모두 필요하다"면서 "카카오T에 대한 규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빅테크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당국도 카카오페이 등이 제공하는 펀드·보험 서비스가 단순한 광고대행이 아니라 법이 금지하는 미등록 중개행위라고 보고 제재할 뜻을 내비쳤다.
한국을 대표하는 빅테크들이 이처럼 전방위에서 공격을 받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이들은 혁신적인 IT 기술을 바탕으로 일반 소비자들의 편익을 증진하고 이용 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는 새로운 시장 접근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덩치가 커지고 시장 지배력을 갖추게 되자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과도한 이득을 챙기고 거래 기업들에 '갑질'을 일삼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상대적으로 해외 사업의 비중이 높고 신사업 진출보다는 기존 사업에 집중해온 네이버와 달리 카카오는 금융에서부터 택시, 대리운전, 미용 등 내수시장 구석구석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여서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된 듯하다. 최근에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 등 굵직한 자회사들을 잇달아 상장했거나 할 예정이어서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이나 계열사 수 등에서 재계 3, 4위를 넘보게 됐다. 이쯤 되면 골목 상권 침범으로 비난받았던 문어발식 재벌이 IT의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난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모 면에서는 빅테크에 미치지 못하지만 배달, 숙박에서 부동산, 의료, 법률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문 분야별 플랫폼 기업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은 처음에는 거의 예외 없이 IT 기술과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과 사업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고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는 공간을 무료 또는 무료와 다름없는 싼 가격에 제공한다. 그러다 독점적 지배력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수수료를 올리거나 다른 플랫폼 사업자와의 거래를 제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횡포를 일삼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플랫폼이 없었을 때보다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고 사업자들 역시 플랫폼으로 인해 늘어난 매출 못지않은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하지만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의와 거래 기회 때문에 쉽사리 플랫폼을 떠날 수도 없게 된다.
물론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이 암적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선도한 혁신이 우리 사회를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돼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미국 등 선진국들에서도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사회에서나 혁신이 드리우는 어두운 그늘도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카카오 택시에서 법률 플랫폼 로톡에 이르기까지 플랫폼 사업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과 갈등이 있었지만, 당국의 대처는 대증요법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카카오, 네이버와 같이 이미 거대 재벌 수준에 이른 빅테크들을 어떤 관점에서 어느 수준으로 규제해야 할지도 정책 방향이 제대로 서지 않았고 사회적 합의 역시 모색되지 않은 것 같다. 빅테크, 플랫폼은 양날의 칼과 다름없다. 문제점이 있지만 규제 일변도로 대응한다면 '교각살우'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좀 더 넓고 깊은 안목으로 혁신을 격려하면서도 상생의 가치 또한 지키는 길을 찾기 위해 국가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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