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고고학자 전전긍긍…유적발굴 참여 현지인들 도피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20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세계 최대 규모 석불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한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국제사회가 문화유산 훼손 가능성에 불안해하고 있다.
10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바미안 석불은 '바미안 대불'(大佛), '바미안 마애불'(磨崖佛)로도 불렸다.
바미안 석불은 수도 카불에서 서쪽으로 125㎞쯤 떨어진 바미안의 사암 절벽에 새겨진 2개의 부처상으로 높이가 각각 55m와 38m였고, 불교가 전성기를 누리던 기원후 600년 전후로 만들어졌다.
신라 시대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바미안 석불이 나온다.
하지만, 2001년 3월 당시 아프간을 통치하던 탈레반 군사정권은 불상이 우상숭배 등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바미안 석불을 포함에 전국의 수많은 석불을 파괴했다.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만류와 호소에도 불구하고, 바미안 석불에 로켓과 탱크 포탄을 퍼부어 머리와 다리 부분을 먼저 파괴한 뒤 폭약을 이용해 산산조각 냈다.
이후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아프간 전쟁이 발발하고, 탈레반이 정권을 잃은 뒤 유네스코(UNESCO)와 여러 나라가 문화유산을 되살릴 방안을 추진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기 위해서라도 폭파된 석불 2개 중 최소 1개를 복원하고 싶어했지만, 돈을 댈 국가들은 잔해가 거의 남지 않아 재건이 어렵다고 보고 현 상태를 유지하자고 논쟁을 벌였다.
이후 유네스코는 바미안 석불이 있던 자리를 주변으로 풍광을 해치지 않는 디자인으로 문화재 보존과 관광객을 위한 '바미안 문화센터' 건립 작업을 벌였다.
그러다 지난달 15일 탈레반이 집권하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19일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탈레반에 "문화유산을 망가뜨리거나 훼손하는 것은 지속적인 평화와 인도주의 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바미안 계곡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 등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당초 지난달 바미안 문화센터 완공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탈레반 재집권으로 보류됐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모든 것이 보류됐다. 이제는 새로운 정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간에 주재하는 프랑스 고고학 발굴단(DAFA) 관계자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아직은 탈레반이 비 이슬람적인 과거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등의 선언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네스코와 아프간 문화유적 발굴에 참여해온 고고학자들은 탈레반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적 발굴에 참여한 현지인들은 혹시 불똥이 튈까 봐 해외로 탈출하거나 숨어지내는 상황이다.
탈레반은 이미 바미안주에 있던 소수민족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을 파괴했다.
마자리는 1990년대 중반 당시 한창 세력을 확장하던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그를 기리는 동상이 고향에 세워졌지만, 탈레반이 이를 부순 것이다.
석상의 파손된 사진이 지난달 18일께 소셜미디어(SNS)에 퍼졌다.
바미안의 유네스코 지부에서 일하다 독일로 탈출한 아프간인 무스타파는 "그들은 비 이슬람 기념비를 파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바미안 주정부에서 일했던 한 관리는 "지난달 초 탈레반이 점령한 뒤 문화부서 소속 예술품을 때려 부쉈다"며 "슬펐지만, 총에 맞을 수 있기에 항의할 수 없었다"고 무력감을 표현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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