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앞에 물러서지 말라' 지침에 中 대외강경 발언 더 강해질지 주목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공산당원에 있어 '호호선생'(好好先生·무골호인)은 진정 좋은 사람이 아니다. '호인(好人)주의'(시비곡직을 따지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사고)를 받드는 사람은 공적인 마음은 없고 사심만 있고, 바른 기운은 없고 세속주의만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1일 공산당 중앙당교에서 열린 당교 가을학기 중년·청년 간부 교육과정 개강식 연설에서 젊은 관료들에게 한 말이다. 당일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인터넷판이 13일 반(反)부패 등 측면에서 시 주석의 이 발언이 갖는 의미를 짚는 글을 올린 것을 포함, 관영매체들이 누차 되새김질하고 있다.
당일 나온 시 주석의 말을 더 들어보자.
"원칙의 문제에서 절대 모호해선 안 되고 절대 양보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과 인민에게 무책임한 것이며 심지어 범죄다. 큰 옳음과 큰 틀림 앞에서 원칙을 말하고 작은 일, 작은 부분 앞에서도 원칙의 문제를 말해야 한다."
맥락상 '호호선생이 되지말라'는 시 주석 발언의 취지는 결국 '원칙 앞에 양보는 없어야 한다'로 들렸다. 공산당의 '원칙'과 '공무' 앞에서는 '무골호인'이 되지 말고 '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선공후사'와 '원칙주의'를 강조한 시 주석 발언은 중국 국내적으로 보면 9천만 명 넘는 조직을 이끄는 당 총서기의 당위적 메시지로, 당원 정신교육의 고삐를 더 당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인'인 기자는 시 주석의 해당 발언록 중 '원칙의 문제에서 모호하지도, 양보하지도 말라'는 대목이 중국의 갈등 현안들에 어떻게 투영될지가 궁금했다. 중국 정부 조직 전·현직 대변인의 '독한' 발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펑롄(朱鳳蓮)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2일 대만 집권 민진당이 미·일 국회의원들과 '안보대화'를 열어 대만해협 문제를 논의한데 대한 견해를 질문받자 "멸망을 자초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또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9일 트위터에 탈레반 대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프가니스탄에 버려진 미군기로 보이는 항공기 날개에 줄을 매달아 그네를 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리며 "'제국의 무덤'(아프간)에 있는 제국의 전쟁기계. 탈레반이 그들의 비행기를 그네와 장난감으로 바꿨다"고 썼다.
그리고 미국 매체 내셔널 리뷰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 대변인 출신인 친강(秦剛) 미국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달 31일 헨리 키신저 등 미측 중량급 인사들이 다수 참가한 화상회의에서 미중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이 할 일을 질문받자 미국이 상황 악화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만일 우리가 이견을 해결할 수 없다면 부디 입 닥치라"고 했다고 한다.
공격적 외교를 펼치는 이른바 '늑대전사'(전랑·戰狼) 외교관 대표로 꼽히는 인물이라지만 그가 중국의 주미 대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할만한 발언으로 여겨진다.
수년전 중국인 지인에게서 "중국에 '다른 의견'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외교·안보 사안에 국한하자면 지금 그 수준을 넘어 '강경론'이 독보적 주류가 된 듯 하다.
그런 터에 '원칙 앞에 물러서지 말라'는 시 주석 훈시까지 나왔으니 중국의 외교·안보 분야 인사들은 점점 범위를 넓혀가는 '핵심이익' 관련 사안에서 더 선명하고 강력한 표현을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원칙주의'와 '강경론'을 등치시킬 필요는 없지만 공무원들 사이에 더 강경한 레토릭으로 '원칙'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쟁이 벌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자신감의 표출이건,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이건, 강경론만 살아남는 사회가 위험하다는 것은 무수한 역사적 사례가 말해준다. 특히 그 사회가 쾌속으로 굴기하는 경제·군사대국이고,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끈으로 정부와 여론이 긴밀히 연결된 나라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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