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헤즈볼라 깃발 흔들며 환영…헤즈볼라 방송 "이란·시리아에 감사"
최악 경제위기 속 헤즈볼라, 정치적 입지 강화 예상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 연료난을 겪는 지중해 연안의 중동국가 레바논에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이란산 연료를 수입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연료난을 타개할 능력이 없는 레바논 정부는 물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한 미국도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헤즈볼라는 미국의 봉쇄를 뚫었다며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이날 레바논 북동부 알아인 지역으로 시리아 국경을 넘은 유조차 20여 대가 잇따라 들어왔다.
시아파 이슬람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극심한 연료 속에 후원국인 이란에서 들여온 연료들이다.
이란은 유조선에 연료를 실어 인근 시리아로 보낸 뒤 우회 경로로 레바논까지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란산 연료를 실은 트럭이 지나는 도로에는 노란색 헤즈볼라 깃발이 펄럭였다. 일부 주민들도 헤즈볼라의 깃발을 흔들고 유조차에 꽃잎을 뿌리며 환영했다.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알-마나르 방송은 연료 트럭의 이동 장면을 보도하면서 "이란과 아사드의 시리아에 감사한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지난 2018년 미국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 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했다.
조 바이든 출범 이후에도 제재는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이 테러단체로 규정한 헤즈볼라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줄 이번 이란산 연료 운송 과정에는 어떤 제약도 없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아 조직됐다. 이후 군사적 무장과 함께 정계에서도 영향력을 키워 레바논 내각은 물론 의회에도 참가한다.
2019년 시작된 경제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과 지난해 8월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라는 악재를 만나 레바논을 국가 붕괴 위기로 내몰았다.
현지 화폐 가치가 90% 이상 폭락하면서 지급 능력이 없는 레바논은 연료와 의약품 등을 수입하지 못했고, 하루 22시간 이상의 단전과 의약품 부족으로 레바논 국민들은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대폭발 참사 이후 책임을 진 내각이 총사퇴한 이후 이어진 13개월간의 국정 공백은 레바논 국민의 어려움을 키웠다.
이런 위기 속에 헤즈볼라는 이란의 연료 공급이라는 카드로 더욱 입지를 키울 기회를 잡았다.
수니파 무슬림 출신의 나지브 미카티 총리 지명자가 13개월 만에 어렵사리 내각을 출범시켰지만, 헤즈볼라는 정부의 승인 또는 협조를 구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이란산 연료 수입을 강행했다.
특히 헤즈볼라는 미국의 제재를 피한 이란산 연료 수입을 두고 "미국의 봉쇄를 뚫었다"고 선언했다.
한편, 미국은 이집트산 가스를 시리아를 통해 레바논에 공급하는 방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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