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고갈·외교관 업무 수행 불가…상당수 망명 고려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지난달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의해 갑자기 무너지면서 해외에 체류 중인 수백 명의 아프간 정부 소속 외교관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17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외국에 있는 전 정부 소속 외교관들의 처지가 매우 불안정해졌다.
우선 본국의 자금 지원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캐나다 오타와 주재 아프간 대사관 관계자는 돈이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월급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의 한 외교관은 관사를 비롯해 모든 것을 팔아야 하는 형편이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아미르 칸 무타키 탈레반 과도정부 외교부 장관 대행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해외 주재 외교관에게 업무를 계속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무타키 장관은 "아프간은 당신들에게 많은 투자를 했다"며 "당신들은 아프간의 자산"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아직 탈레반을 정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외교관이 할 수 있는 업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영국 노팅엄대의 방문 교수이자 국제관계 전문가인 아프잘 아슈라프는 "이 외교관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그들은 정부를 대표하지 않으며 집행할 정책도 없다"고 말했다.
외교관들은 보복 우려 때문에 귀국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아프간 외교관은 이처럼 해외에 발이 묶인 아프간 외교관과 대사관 소속 직원, 가족의 수는 3천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외교관 상당수는 망명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린 주재 외교관은 "외교관들은 기꺼이 난민이 되기를 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는 망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도는 난민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라 국제법상으로 난민 보호에 대한 의무가 없는 나라인데다 망명 승인 절차에도 여러 해가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와중에 탈레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외교관도 있다.
오스트리아 주재 마니자 바크타리 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탈레반에 의한 인권 탄압 사례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교관은 아프간에 남은 가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생활고와 싸우며 사태를 관망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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