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중의원 해산도 못하고 '퇴출'…9년만에 예측불허 총재선거
지지 1위는 고노·결선 역전 가능성…세대교체 이뤄질지 주목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2일 일본 집권 자민당이 총재 선거 투표일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9년 만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쟁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자민당 총재를 겸직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사의를 밝힌 가운데 4명의 국회의원이 차기 총리를 노리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총재 선거 당선자는 내달 4일 소집될 임시 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지명된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얼굴'로 삼기에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민당 구성원의 판단과 주요 파벌의 이해관계 등이 얽힌 가운데 결선 투표까지 가는 혼전이 예상된다.
이번 총재 선거를 계기로 젊은 의원들은 당의 쇄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재집권한 후 큰 변화 없이 이어진 자민당 내 주도 세력에 변화가 생길지도 주목된다.
◇ 무파벌로 권좌에 오른 스가…중의원 해산도 못 하고 '퇴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미숙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과 지지율 급락이 스가가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포기한 이유로 꼽힌다.
신종 바이러스 대응은 구태를 벗지 못한 행정 때문에 곳곳에서 혼선을 빚었고 스가의 말주변 부족으로 인해 '무능한 내각'이라는 이미지가 가중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스가를 간판으로 총재 선거에 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석이 당내에서 대두했고 파벌이 없는 스가는 반발을 제압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1년 전 스가가 권좌에 오를 때는 무파벌이라는 점이 주요 파벌이 별 거부감 없이 밀어주기를 할 수 있는 배경이었는데, 그가 당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 되자 기댈 수 있는 파벌이 없어 저항하기 어려운 양상이다.
통상 집권당 총재를 겸직하는 일본 총리의 핵심 권한 중 하나는 당 인사와 각료 임명이지만 스가는 1년 전 자민당 간부 인사와 조각(組閣)을 단행한 것 외에는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일본 총리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카드인 중의원도 해산도 실행하지 못했다.
양손이 묶인 스가는 전장에서 칼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한 셈이다.
이에 따라 미키 다케오(三木武夫·1907∼1988) 정권 시절이던 1976년 12월에 이어 45년 만에 국회 해산이 아닌 임기 만료에 따른 중의원 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이 커졌다.
◇ 아베 재집권 이후 9년 만에 예측 불허 총재선거
이번 총재 선거의 특징은 2012년 9월 이후 9년 만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접전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 4명이 출마했다.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자민당 7개 파벌 중 기시다파를 제외한 6개 파벌은 지지할 후보를 한 명으로 압축하지 못해 사실상 각자의 판단에 따른 투표를 용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애초에 투표 자체가 무기명 투표라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파벌 차원에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지지 후보가 통일되지 않아 표가 분산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
파벌들의 태도가 엉거주춤한 것은 이번에 누가 당선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총재 선거 때는 일찌감치 스가 대세론이 형성됐다.
아베 재집권 후 실시된 총재 선거에서도 아베 재선출을 기정사실로 삼은 가운데 총재 선거가 치러진 경우가 많았던 것과는 대비된다.
◇ 유권자 선호도 1위는 고노…아베 견제
유권자 지지율은 고노가 큰 격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 주요 언론이 실시한 조사·분석 결과에 의하면 고노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후보로 대상자를 좁혀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1차 투표에서는 자민당 국회의원과 당원·당우 표가 1대 1 비중으로 반영되지만 결선 투표에서는 국회의원 표의 비중이 커진다.
고노는 당원·당우에서 지지자를 많이 확보했으나 국회의원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적다.
2·3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시다와 다카이치가 결선 투표 때 연합하는 경우 고노가 역전패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
고노가 앞서 아베 정권 시절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고 탈원전을 주장했고 방위상 재직 중에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 체계인 '이지스 어쇼어'를 백지화시키는 등 '돌출 행동'을 한 것 때문에 그를 경계하는 국회의원들이 꽤 있다.
공교롭게도 고노는 아베나 그의 맹우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 모두 앙숙 관계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과 손을 잡고 총재 선거에 임하고 있다.
자민당 최대 파벌 호소다(細田)파의 지주인 아베는 다카이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다카이치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기시다가 결선에 오르는 경우 고노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기시다를 지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대로 다카이치가 결선에 오르는 경우 기시다 표 중 상당수가 다카이치에게 갈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자민당 총재 선거의 독특한 구조로 인해 과거 결선 투표에서 결과가 뒤집힌 사례가 있다.
아베가 자민당 총재로 복귀한 2012년 9월 선거 때 아베, 이시바 등 5명이 출마했는데 이시바는 1차 투표에서 당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1위를 했으나 과반을 얻지 못했다.
아베는 국회의원들만 참여하는 결선 투표에서는 이시바를 누르고 승리했다.
이번 총재 선거의 세부 방식이 당시와는 다르지만 결선 투표로 가는 경우 국회의원의 지지를 많이 받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은 동일하다.
◇ 총선 앞둔 총재 선거…유권자 의식하는 젊은 의원들
하지만 결선 투표에서 자민당 의원들이 고노를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운 사정도 있다.
중의원 임기 만료에 따라 11월께 총선이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 자민당이 민심과 동떨어진 인물을 총재로 선출하고 그가 총리가 된다면 이로 인해 유권자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
지역구 기반이 취약한 3선 이하 의원들 사이에서는 총재 선거 결과가 악재가 돼 자신이 낙선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결과에 비춰보면 고노가 당선되는 편이 총선 때 자민당 의석수 확보에 유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시다파를 제외한 나머지 6개 파벌에서 고노를 추천한 의원들이 골고루 나온 점이 이런 정세를 방증한다.
이시바 외에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이 고노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으며 최근에는 스가 총리도 고노 지지에 합류했다.
반면 지역구가 탄탄해 낙선 우려가 크지 않은 베테랑 의원들의 경우 파벌의 논리나 아베·아소 등 당내 주요 인사와의 친소 관계를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보수·우익 성향 의원들은 다카이치, 균형이나 안정감을 중시하는 이들은 기시다를 주로 지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다는 이번 총재 선거 후보자 중 유일하게 아베 정권의 대표적인 사학 비리 의혹인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과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재무성의 공문서 변조 사건을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눈길을 끈다.
모리토모 스캔들 재조사는 아베와 아소를 자극하는 일이다.
나머지 후보 3명이 재조사에 대해 소극적 혹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의 실력자인 아베의 눈치를 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靑木理)는 후보자들이 "최대 파벌(출신) 아베의 의향에 일종의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면서 "변할 것인가 변하지 않을 것인가가 (총재 선거를 보는) 하나의 초점"이라고 민영방송 TBS에 출연해 논평했다.
과거에 여러 차례 출마 의욕을 보였으나 추천인 20명을 확보하지 못해 좌절했던 노다가 이번에 극적으로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고노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원·당우를 중심으로 일정한 지지 세력을 확보한 노다가 출마하면 고노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제반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번 선거는 결선 투표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결선투표에서 대세를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이 누구에게 무게를 실어줄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각료를 지낸 한 자민당 인사는 "이번 (총재 선거의) 특징은 어느 파벌도 최후까지 누구에게 (표를) 넣을지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상황을 진단했다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은 21일 분위기를 전했다.
◇ 자민당 변화·세대교체 가능성에도 주목
이번 총재 선거가 2012년 자민당이 재집권한 후 줄곧 이어진 아베의 영향력과 선을 긋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아소 부총리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등 만 80세를 넘긴 노장들이 실권을 내려놓고 젊은 세대의 역할이 부각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스가 정권은 아베 계승을 표방해 큰 변화가 없었는데 만약 주도 세력이 바뀌면 자민당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보수·우파 성향의 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이끌다 정계를 은퇴하고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은 자민당이 아베와 같은 보수·우파 성향 지지자가 많지만, 변화에 대한 요구도 상당하다고 분석했다.
하시모토는 이와 관련해 "자민당 당원은 아베와 같은 사고방식을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도 많지만 (중략) 세대교체나 가치관을 바꾸자는 목소리도 많은 것 같다"면서 "지금이 기시다나 고노처럼 생각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 이행기"일 수도 있다고 20일 요미우리(讀賣)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말했다.
정치저널리스트 스즈키 데쓰오(鈴木哲夫)는 "고노는 약 2년 전부터 탈원전 정책을 염두에 둔 정권 구상을 품어왔다.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경우 간사장에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을 배치하고 탈원전의 동지인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에게도 요직을 준비하는 포진을 생각할 수 있다"고 주간지 프라이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아소 다로 재무상이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자민당 내에서 세대교체가 가속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위기감에 당 쇄신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당선 횟수가 3회 이하인 자민당 중의원 의원 약 90명은 이달 10일 '당풍(黨風·당의 분위기나 기풍) 일신 모임'을 발족하고서 9년 가까이 이어진 아베·스가 정권이 밀어붙이기 정권 운영, 밀실 정치로 민심을 잃고 있다며 젊은 인재를 등용하는 등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총재 선거 때 국회의원들이 파벌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 소신에 따라 투표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촉구해 주목받았다.
총재 선거 후보자들은 이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등 경청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자민당에서 두 번째로 큰 파벌 회장인 아소는 "이것은 학급위원 선거와는 사정이 다르다. 총재 선거라는 이름을 빌린 권력 투쟁이라는 것을 제대로 명심하기를 바란다. 지면 냉대받는다"며 16일 열린 파벌 모임에서 언급하는 등 젊은 의원들과는 온도 차를 보였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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