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봉쇄는 학살 조장 이해할 기회 버리는 것"
가담자 처벌에 필요하지만 페북 "사생활 보호" 거부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미국 법원은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에 미얀마 군부가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집단 학살을 부추긴 계정의 기록을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22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연방 법원은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폭력 조장과 연계돼 2018년 폐쇄된 페이스북의 계정 기록을 넘기라고 판결했다.
이는 감비아가 이슬람 협력기구(OIC)를 대신해 무슬림계 로힝야족이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집단 학살의 대상이 됐다면서 미얀마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가운데 나왔다.
법원은 판결에서 페이스북이 미얀마를 제소한 국가들에 관련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로힝야족에게 닥친 비극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은 비공개 계정과 관련한 정보 요청에 순응해 해당 문서를 제공하는 것은 미국의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2018년 폐쇄된 계정의 기록물이 개인 통신에 대한 법적 보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지아 파루퀴 판사는 "공개가 요구된 이 기록을 봉쇄하는 것은 집단 학살을 얼마나 조장했는지 이해할 기회를 버리는 것"이라면서 "페이스북이 사생활 권리를 보호한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잔뜩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감비아는 ICJ 제소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통해 페이스북에 2018년 차단한 미얀마 군부 계정의 기록을 요청한 바 있다.
페이스북은 2018년 로힝야족 인권침해, 정보 조작 등의 이유를 들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비롯한 군부 인사와 기관들의 계정을 대거 폐쇄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혐오 발언으로 분열을 조장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데 자사 플랫폼이 사용되지 않도록 더 강력한 조처를 해야 했다고 뒤늦은 후회를 밝히기도 했다.
미얀마에서 페이스북은 그대로 '인터넷'과 같은 의미로 통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통신 수단이다. 2020년 1월 현재 미얀마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2천23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군이 2017년 로힝야족 수천 명을 죽이고 70만여 명을 몰아낸 데에도 페이스북을 통한 정보 조작, 선동의 힘이 컸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미국 법원의 이번 판결은 페이스북이 잘못된 정보를 조장하는 계정을 차단했음에도 이 계정의 정보를 제삼자에게 넘기라고 요구하는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WSJ은 평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개발도상국에서 인터넷 그 자체로 활용되는 페이스북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리고 페이스북이 오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고 전했다.
실제 중동 지역에서는 인신매매범의 여성 학대에 페이스북이 이용됐으며 에티오피아의 한 무장단체는 페이스북을 통해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을 부추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페이스북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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