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기업에 지분 매각 시나리오 부상…"3개 법인 분할 후 부동산 부문 국유화 검토"
'시스템적 위기' 조짐 땐 개입…"당국, 재무 분석하며 대비 중"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부채가 350조원대에 달하는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유동성 위기가 중국을 넘어 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는 불안 요인으로 급부상했지만 중국 당국은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키며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공동 부유' 국정 기조를 전면화한 중국 공산당이 장기 집권 기반 다지기 차원에서 고통이 따르더라도 부동산 부문으로 흘러가는 자금 차단에 나선 결과로 헝다 사태가 터졌다는 점에서 당국이 이제와 정책 기조를 바꿔 헝다 구제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이 먼저 제기된다.
하지만 최악에 헝다가 파산해 실물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헝다를 위시한 부동산 업계의 위기가 은행권으로 본격 전이되는 조짐이 나타난다면 중국 당국이 결국에는 개입해 부채 조정, 헝다를 국유기업에 인수시키는 방법으로 충격 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공동부유' 목표 앞세운 중국…"시스템 위기 아니면 개입 안 해"
헝다 사태 불안이 지속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이나 관영 매체들은 아직 관련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현재로서는 당국이 즉각 개입보다는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쪽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초 시장은 22일 열린 리커창(李克强) 총리 주재 국무원 상무회의에 주목했다.
하지만 국무원은 회의 후 발표한 보도문에서 "경제 동향을 면밀히 추적·분석해 거시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기주기 사이의 정책을 미리 세밀하게 조정하고, 재정·금융·취업 정책의 연동성을 강화한다"고 언급했을 뿐 헝다 사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대신 중국 당국은 헝다의 파산까지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진 상태다.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처럼 행세하는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環球時報) 총편집인은 최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헝다가 '대마불사'(大馬不死·바둑에서 대마가 결국은 살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 일)의 요행을 바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기업은 반드시 시장 방식의 자구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최고위 부호 중 한 명인 쉬자인(許家印) 회장이 설립한 헝다의 유동성 위기는 전기차, 생수 등 비핵심 사업에 문어발식으로 진출한 헝다가 자초한 면도 있다. 하지만 당국이 작년 말부터 주택 가격 안정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헝다는 결정적으로 유동성 위기의 벼랑 끝으로 몰린 것 역시 사실이다.
당국은 작년 말부터 선제적 금융 위험 제거와 주택 가격 안정을 목표로 삼아 부동산 개발업체와 주택 구매자들에게 흘러가는 자금을 강력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업 환경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다. 당국의 지침에 국유은행들은 신규 대출이나 차환을 꺼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은행은 만기가 오지 않은 대출까지 서둘러 회수에 나서면서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자금 유동성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각 지방 당국이 주택담보 대출을 억제한 가운데 주택 구매 자격 제한 등 수요 억제책을 쏟아내면서 주택 구입 열기도 크게 가라앉은 상태다.
주택 가격 안정은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시대 마련된 집단 지도체제를 무력화하고 장기 집권 시대의 문을 열고자 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전면에 앞세운 국정 목표인 '공동 부유' 실현을 위한 핵심 정책이다.
따라서 설사 헝다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넘어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공산당과 시 주석의 집권 기반 다지기와 관련된 '큰 그림' 차원에서 진행 중인 부동산 억제 정책이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디폴트 발생은 결국 시간 문제일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시스템의 안정이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헝다를 지원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중국 정부가 구제에 나선다면 부동산 분야의 고삐를 죄려는 당국의 캠페인을 약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중국팀장도 23일자 보고서에서 "헝다그룹의 파산 위험이 확대된 원인을 분석할 때 당국의 즉각적인 개입 가능성은 명분과 정책 배치 측면에서 매우 낮다"며 "달러채 등 디폴트 발생 용인, 사후적 그룹·부채 구조조정 개입 시나리오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 부분 디폴트→비핵심 사업 매각·채무 조정→국유기업 지분 인수 시나리오 부상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가뜩이나 중국 경기의 급속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실물·금융 분야에 걸쳐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운 헝다 사태를 마냥 손 놓고 있기만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중국 당국이 자국의 장기적인 '높은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부동산 산업의 부채 축소를 작심하고 추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공교롭게도 헝다가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시점이 좋지 않다.
중국이 부동산 산업을 겨냥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당시에만 해도 중국 경제가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 강하게 반등하던 때였지만 현재는 경기 흐름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인터넷, 사교육,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을 향한 공산당의 '정풍운동'식의 거친 규제로 인한 민영 기업 위축, 산발적인 코로나19 재확산, 원자잿값 급등, 반도체 품귀 등 산업사슬 병목 현상 등의 여파 속에서 최근 중국 경기는 급속히 둔화하는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또 중국 은행권의 전체 자산은 45조 달러(약 5경3200조원)에 달해 산술적으로는 350조원대의 헝다 부채가 은행권에 끼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지만 일단 헝다의 디폴트가 현실화했을 때 은행과 채권 시장에 미칠 파장이 어디까지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로이터 통신은 "많은 금융 기관들이 직접 대출 또는 채권 보유를 통해 헝다에 노출되어 있고 일단 디폴트가 나면 하이일드(고수익) 채권시장에서 투매가 일어날 것"이라며 "이코노미스트들은 헝다 문제가 리먼 브러더스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베이징의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확실히 복잡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결국에는 헝다 사태로 8천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의 줄도산, 수십만명의 고용 불안, 금융 위기 조짐이 나타나게 된다면 중국 당국이 결국에는 개입해 부채 조정 또는 국유기업의 인수 등의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아울러 시 주석이 내년 가을 열릴 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 집권의 문을 열고자 한다는 점에서 대규모 실업과 분양자들의 아파트 인수 불가 사태 등의 사회경제적 대혼란을 초래할 헝다 파산을 내버려 두기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아이리스 팡 ING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는 헝다가 일부 자본을 얻도록 도울 것이지만 헝다는 지분을 국유기업 같은 제삼자에 팔아야 할 것"이라며 "그에 앞서서는 비주거용 부동산 등 비핵심 사업 부문 매각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 명보(明報)는 이날 경제 전문 매체 아시아 마켓스 보도를 인용해 중국 당국이 헝다를 부동산 부문 등 3개 법인으로 나누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수일 내에 관련 발표가 날 수 있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핵심인 부동산 개발 부문이 국유기업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헝다가 짓고 있는 부동산을 구입한 중국의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헝다 파산이 중국 경제에 주는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아시아 마켓스는 전했다.
중국 당국이 이미 개입을 위한 기초 작업에 나선 조짐도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조용히 헝다의 재무 조사를 위한 회계 및 법률 전문가들을 모아 잠재적인 구조조정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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