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지도자 중 지지율 최고…대형 위기에 강한 총리
(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독일이 26일(현지시간) 연방하원 총선거를 치르면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시대가 16년 만에 막을 내린다.
독일은 선거제도의 특성상 하나의 정당이 단독 정부를 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총선이 끝나도 연립정부 협상에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이날 총선 결과에 따라 메르켈 총리의 뒤를 누가 이을지가 결정된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동독 출신 총리로 선출된 뒤 16년간 재임하다, 자의로 총리직을 내려놓는 첫 총리가 된다.
목사의 딸로, 동독의 평범한 물리학자였던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989년 훗날 기독민주당(CDU)에 합류한 옛 동독의 정치단체 중 하나인 민주궐기(DA)를 통해 정계에 입문, 구동독 마지막 정부의 대변인을 지냈다.
통일 이후에는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발탁으로 기민당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된 뒤 '콜의 양녀'로 불리며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1994년 환경부 장관, 기민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1999년 비자금 스캔들에 휩싸인 '정치적 아버지' 콜 전 총리에게 정계 은퇴를 요구하면서 결별했고, 권력의 공백 속에 2000년 첫 여성 기민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기민당 총리 후보로 추대되고 2005년 총리로 선출돼 정계 입문 이후 총리까지 불과 15년 만에 초고속 출세 가도를 달렸다.
총리 취임 후에는 2009년 총선, 2013년 총선, 2017년 총선에서 내리 승리하면서 4차례 연임했다. 그는 이후 2018년 말 자의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연정 협상이 길어져 오는 12월 19일까지 총리로 재임한다면 역대 최장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에는 1966년 이후 처음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을 성사시켰고, 이후 자유민주당(FDP)과 연립했던 2009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3차례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이끌었다.
그는 정치 노선과 관계없이 사안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되, 독일 시민들의 의견에 항상 세심히 귀 기울이면서 절충·타협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이른바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2011년과 2015년 유럽 부채위기, 2015년 유럽 난민위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등 위기 때마다 성공적으로 대응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시리아 내전으로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대륙으로 밀려들었던 2015년 유럽 난민위기 당시에는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구호 아래 상한을 두지 않고 난민을 받아들이는 통 큰 리더십을 보였다.
유럽 부채위기 때는 구제금융에 제동을 걸어 '마담 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유로화가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면서 최종적인 유럽연합(EU)의 붕괴를 막아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 때도 메르켈 총리는 EU 내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조달을 성사시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에도 EU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 최저임금 도입 ▲ 동성결혼 허용 ▲ 2022년 말까지 탈원전 선언 등을 성사시켜 독일 사회의 진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미국을 대신해 서방 자유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유럽연합(EU) 내에서는 "벌써 메르켈 총리가 그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재임 기간이 16년에 달하면서 이 기간 태어난 메르켈 세대는 총리는 여성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믿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탄생시킨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유럽 안팎에서 유럽 주요 지도자 중 가장 높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6개국에서 조사한 결과다.
하지만, 여론조사기관 알렌스바흐에 따르면 독일 유권자 중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 비율도 66%로 2005년(45%)이나 1998년(50%)보다 높다.
자비네 크롭 자유베를린대 정치학과 교수는 ZDF방송에서 "메르켈 총리는 첫 여성 총리이자 첫 동독 출신 총리로 어려운 시기에 침착하게 정부를 운영해냈고,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면서 "반면에, 기후정책이나 디지털화 등 큰 미래과제는 질질 끌고 해결하지 못해 차기 정부에서 방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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