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대 규모…마크롱 "유럽 순진하게 굴지 말고 스스로 지켜야"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호주의 잠수함 계약 파기로 뒤통수를 크게 맞은 프랑스가 그리스에 수조원 규모의 군함 3척을 판매하기로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서 이러한 내용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분을 일부 보유한 방산 업체인 나발 그룹은 2024년부터 그리스 측에 호위함 인도를 시작할 계획이다.
계약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로이터 통신은 그리스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그 규모가 약 30억 유로(약 4조1천593억 원)라고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협약으로 프랑스와 그리스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 깊어지고, 지중해에서 공동의 관심사를 지켜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리스가 프랑스 나발 그룹을 선택한 것은 프랑스 군수 산업에 대한 신뢰를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자신이 임기 초반부터 줄기차게 주창해온 "유럽의 전략적 자치를 향한 대담한 첫걸음"이라고도 평가했다.
이번 협약은 호주가 미국, 영국에서 핵 추진 잠수함 기술 지원을 받기로 하면서 나발 그룹과 맺은 77조 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12척 공급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힌 이후에 나왔다.
미국과 호주, 영국은 중국을 겨냥해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3자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를 발족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호주 등이 결성한 안보 협력체가 프랑스의 인도 태평양 지역 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히려 미국이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존재감을 확장하고 싶어하는 이때 유럽은 자체 방어권 확대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은 위대하고 유서 깊은 우방이지만, 10년 넘게 미국이 자신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전략적 관심을 중국과 태평양 쪽으로 기울이는 걸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점점 강해지는 세력의 압박이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방어할 힘과 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며 "유럽이 순진하게 구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동맹을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안에서 유럽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으로선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보호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기 힘으로 방어할 능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심지어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 체제인 나토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오늘은 그리스와 프랑스가 양국 방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역사적인 날"이라며 4번째 호위함을 구매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앞서 그리스는 프랑스 다소 그룹이 만든 라팔 전투기 24대를 구매하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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