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개 56년 만에 위조 확인…1920년대 개발된 잉크 사용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바이킹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증거로 여겨졌던 '빈랜드 지도'(Vinland Map)가 반세기 만에 가짜로 결론내려졌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예일대 바이니키 희귀서적도서관의 고서적 큐레이터인 레이먼드 클레멘스는 성명을 내고 "빈랜드 지도는 가짜"라며 "여기에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예일대가 지난 1965년 이 지도를 대중에 공개하면서 바이킹이 대서양 서안을 탐험했다는 증거이자 유럽 최초의 북미 대륙 묘사라며 '중세 시대의 값진 보물'이라고 평가한 지 56년 만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문제의 지도는 지난 1957년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골동품 수집가인 로런스 위튼이 유럽에서 익명의 출처로부터 입수하면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양피지에 그려진 이 지도는 자선가로 유명한 폴 멜론이 구입해 예일대에 기증했다.
당시 예일대는 이 지도가 콜럼버스의 항해보다 50여 년 빠른 1440년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1965년 지도가 처음으로 공개되자 NYT가 1면 기사로 보도하는 등 유력 매체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발표 직후 캐나다 뉴펀들랜드 등 북미 일부 지역에서 서기 1000년 무렵 바이킹이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그러나 빈랜드 지도를 둘러싼 진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도에서 묘사된 그린란드의 모습이 흡사 20세기의 지도를 보고 그린 것처럼 너무나 정확하다는 점이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그린란드는 섬이 아니라 반도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15세기에 그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바이킹은 지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스칸디나비아 역사를 연구하는 엘리자베스 로 조교수는 NYT에 "바이킹은 항해할 때 지도를 쓰지 않았다"며 당시 그들의 모험과 항해 조언은 구두로 전승됐다고 말했다.
지도가 가짜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잉크에서 나왔다.
중세 시대에 사용된 잉크는 시간이 지나도 부스러지지 않지만, 빈랜드 지도에 사용된 잉크는 쉽게 부스러지면서 전문가들의 의구심을 키웠다.
예일대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이 지도에 사용된 잉크에는 높은 수준의 티타늄 화합물이 검출됐는데 이는 1920년대에 처음 개발된 것이다.
이 대학 도서관 큐레이터인 클레멘스는 지도 뒤에 적힌 라틴어 글자가 현대 잉크로 겹쳐 쓴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것이 위조라는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클레멘스는 이번 발표로 빈랜드 지도의 진위 논란이 종결되기를 바라면서도 "그 자체로 역사적 물건이자 국제적 영향을 미친 위조 사례"라며 대학 컬렉션에 그대로 보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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