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기술 결부된 대중국 포위망 강화 경계하는 듯
북핵과의 '이중잣대' 지적…대북압박 거부 논리 삼을 가능성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미국의 대 호주 핵추진 잠수함 건조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의 안보 파트너십)'에 대한 중국의 거센 반발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오커스 출범이 발표된 것은 지난달 15일로 보름 이상 경과했음에도 중국의 신랄한 비판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 외무차관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을 활용해 "핵무기 비보유국인 호주가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로 사용할)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한다면 미국과 영국, 호주는 북한과 이란 등 다른 나라가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을 무슨 이유로 반대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중국 국방부 우첸(吳謙) 대변인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합의가 심각한 핵확산 위험이 있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화상으로 진행한 중국·유럽 고위급 전략대화에서 오커스 및 핵잠수함 협력이 냉전 회귀, 군비경쟁 심화와 핵확산 측면에서 역내 평화·안정과 국제질서에 '3대 폐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자국 견제 목적이 농후한 미국 중심의 3국 협의체(오커스) 결성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하지만 특히 핵추진 잠수함 건조 지원 부문에 화력을 집중하는 양상이다.
◇NPT 위반으로 보긴 어려워…중국 "NPT 정신 위배" 강조
우선 따져볼 부분은 미국의 대 호주 핵추진 잠수함 기술 지원이 핵무기 비확산 체제를 지탱하는 NPT를 포함한 국제 규범에 위배되느냐다.
NPT는 NPT가 용인한 핵무기 보유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이 핵무기 비보유국에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 장치나 그것들의 관리를 양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NPT는 또 핵무기 비보유국이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 장치를 제조 또는 획득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핵무기 보유국이 원조·장려·권유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핵추진 잠수함을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 장치'로 볼 수 있느냐다.
핵 추진 잠수함이 분명 군사용이긴 하지만 핵을 추진 동력으로 삼는 것이지 그 자체를 살상에 쓰는 것이 아니라서 NPT가 금지하는 핵무기 또는 기타 핵 폭발장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이 'NPT 위반'이라고 하지 않고 'NPT 정신 위반'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 美, 2006년 인도 이어 이번엔 호주와 핵 협력…중국, 핵 매개로 한 미국의 '포위망' 강화로 간주하는 듯
중국의 강한 반발에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소재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호주의 핵잠 보유가 갖는 미중 전략경쟁 관련 실질적 함의에 대한 경계심이 내포돼 있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 장기간 잠항이 가능한 호주 핵잠수함이 미국의 해상 전력과 연동돼 태평양 일대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중국으로서는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요인으로 보인다.
특히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지원은 단지 물리적인 지원을 넘어 핵 추진 잠수함 기동과 관련한 노하우 전수, 해도(海圖) 공유 등을 의미할 수 있기에 호주 자체의 해군 전력 강화와 함께 미국과 호주 해군의 '일체화'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번 호주 핵잠 건조 지원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아태지역의 동맹국 및 우호국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대 중국 포위망 강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은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 호주 핵잠 지원이 일회적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일을 시작으로 핵 기술이 결부된 미국 주도의 안보 협력이 한국, 일본 등 미국의 다른 동맹국에게로 도미노처럼 확산할 가능성도 중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목일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년, NP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와 핵기술 및 연료 제공을 골자로 한 핵협정을 맺음으로써 인도가 핵무기 원료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바 있는데, 그때도 중국은 NPT 체제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반발한 바 있다.
◇ 북핵 관련 미중 '엇박자' 심화할수도
이번 사안이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미칠 영향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북 제재 완화를 내세우며 서방과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중국이 앞으로 대북 압박을 거부하는 명분으로 이 사안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엔기구 주재 중국 대표부의 왕췬(王群) 대사는 지난달 16일(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 9월 이사회 회의에서 오커스를 비판하면서 "미·영의 이번 조치는 적나라한 핵확산 행위"라며 "이런 핵확산 행위는 한반도 핵 문제와 이란 핵 문제 등 핫이슈의 해결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국제 규칙과 핵확산의 위험을 무시한 채 고도로 민감한 핵물질과 핵기술을 호주라는 핵무기 비보유 국가로 공공연히 이전하려 하는데, 그러면 미국은 핵기술 개발을 이유로 한 이란과 북한에 대한 독자제재를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과 호주에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논리다.
앞으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하고, 최대의 대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의 대북 압박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중국은 이번 오커스 문제를 거론하며 공세를 비켜가려 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물론 NPT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핵무기를 개발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어겨가며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 북한과 호주의 사례는 결코 동렬에 놓을 수 없지만 중국과 북한, 러시아 등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쪽에서는 '미국이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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